유로 동전 '독일天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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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독일이 유로 동전계를 평정해가고 있다.

올 초 유로화가 전면 사용되면서 독일 국적의 1유로 동전이 다른 나라의 동전을 밀어내고 전 유럽으로 세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독일 동전의 사용이 늘고 있다"며 "가까운 장래에 독일 동전이 전 유로존을 지배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당초 유로화 동전은 유럽연합(EU) 12개국이 경제 규모에 따라 발행을 분담했다.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독일이 총 33%를 찍었고, 프랑스·이탈리아는 각각 16%·15%씩 주조했다. 경제력이 달리는 핀란드는 2%, 룩셈부르크는 0.2%만 발행했다.

유로 동전은 어디서 찍은 것이든 유로존 내 12개국 어디에서나 자유롭게 통용된다. 문제는 찍은 나라별로 동전의 뒷면이 다르다는 것. 1유로 동전 앞면은 모두 'EU'의 상징을 새기도록 했지만 뒷면에는 발행국의 상징을 독자적으로 새겨 넣도록 했다.

독수리가 새겨진 독일 동전의 강세는 우선 EU 통합의 가속화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비즈니스·관광 등 EU 내 이동이 잦아지자 유로로 환전한 사람들이 숫자가 가장 많은 독일 동전을 들고 다니게 됐다.

게다가 동전 수집가들은 독일 동전보다 룩셈부르크 등 소수 발행국의 동전이 희소 가치가 있다며 매집에 나섰다. 적게 발행한 동전일수록 더 빨리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룩셈부르크에서는 이미 자국산 1유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아일랜드·핀란드·그리스·포르투갈에선 반 정도가 다른 나라 동전이다.

통계학자들은 "이러한 추세가 광범위하게 퍼질 것이며 독일 국적의 동전이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룩셈부르크 등 각국 학계는 동전의 국적을 알리는 캠페인을 대규모로 전개하기 시작했다.

학교에는 '각국 1유로짜리 동전 꾸러미'를 교육용으로 보내고 있다. 학생들에게 동전마다 국적이 다를 수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상점·은행 등에도 홍보는 물론 캠페인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탱크 대신 동전이기는 하지만 독일산(産)이 전 유럽을 장악하는 것은 다른 나라들엔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인 모양이다.

이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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