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디카프리오 너만 믿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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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프리오만 믿는다'.

최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영화 한편이 있다. 바로 다음달 개봉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갱스 오브 뉴욕(Gangs of New York)'이다. 제작비 1억2천만달러(약 1천4백억원)를 들여 2년이 넘게 촬영한,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대작이다.

할리우드가 마른 침을 삼키는 이유는 이 영화의 흥행 여부에 할리우드 스타 시스템의 존폐가 걸려 있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영국 신문 옵서버는 "만약 디카프리오마저도 영화를 흥행시킬 수 없다면 그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옵서버는 "'출연=흥행'으로 통하는 배우들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다소 과장 섞인 제스처로도 보이지만 최근의 할리우드 박스오피스를 들여다보면 동의할 수밖에 없다. 올 들어 이른바 '빅 스타'를 기용한 대작들이 줄줄이 참패했다. 1억달러를 들인 잠수함 영화 'K-19'가 해리슨 포드라는 거물을 기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비의 30% 남짓밖에 건지지 못했다.

'더 록''콘 에어''페이스 오프'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니컬러스 케이지도 이름값을 못하긴 마찬가지. 2001년 '패밀리 맨'에 이어 전쟁영화 '윈드토커'마저 맥을 못췄다. 올해 '밴디츠''하트의 전쟁'에 출연한 브루스 윌리스는 더 이상 '다이 하드'의 스타라고 하기 무색할 정도였다. 멕 라이언·샌드라 블록 등 여배우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편당 출연료 2천만달러(약 2백40억원)를 넘는 초특급 배우들만 체면치레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SF 액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톰 크루즈, 갱스터 영화 '로드 투 퍼디션'의 톰 행크스 등이다. 세계적 스타 하나를 내세워 끌고가는 할리우드의 오랜 전략에 암운이 깃들고 있는 것이다.

이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스파이더 맨''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반지의 제왕' 등과 같은 작품들은 뚜렷한 톱스타가 없었지만 폭발적 성공을 거뒀다. 이들 영화에는 스타라고 할 만한 배우는 찾기 힘들다. 오히려 '반지의 제왕'은 일라이자 우드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해리 포터 역을 맡은 대니얼 래드클리프를 비롯한 세 아이들을 신데렐라로 부상시켰다. 스타가 영화를 끌고 가는 대신 영화의 성공이 무명 배우를 스타로 만든 셈이다.

이들 히트작엔 공통점이 적지 않다. 첫째, 만화·소설 등 원작의 인지도를 등에 업었다. 둘째, 특수효과 등이 돋보인다. 유명 배우에게 개런티로 지불할 돈을 볼거리에 투자한 것이다.

할리우드가 우려하는 스타 시스템에 대한 불안감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몇년 사이 배우들의 출연료는 치솟았지만, 몇 편을 제외하고는 출연료에 값할 만한 사례는 없었다는 게 충무로의 대체적인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의 히트작들이 들려주는 메시지는 한가지. 할리우드나 충무로나 모두 작품의 질을 높이는 내실을 기할 때가 됐다는 점이다.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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