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반대로 경제특구 보류라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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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제자유구역법(구 경제특구법)안이 노동계의 반발로 지난주 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한 것을 보며 다시 한번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주 초에는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지대(FTA) 창설에 대해 유독 한국만이 외톨이 입장을 취하더니, 이번에는 나라 안에서 '아시아의 외톨이로 남아도 좋다'는 식의 주장이 입법을 가로막은 것이다.

노동계가 문제 삼는 것은 파견근로자 제도와 월차·생리휴가 관련 조항이다. 자유구역 안에서도 밖에서와 마찬가지로 파견근로를 제한하고 월차·생리 '유급'휴가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정부는 파견근로를 정보기술(IT) 등 '전문업종'에 한해 허용하고, 월차 휴가는 폐지하되 생리 '무급'휴가는 인정한다는 절충안을 내놓았으나 노동계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은 자유구역다워야 한다. 자유구역에도 국내 기준을 똑같이 적용한다면 애초부터 자유구역이 아니다. 자유구역은 국내 기준이 아니라 국제 기준을 따라야 한다. 그런 면에서 외국에는 예가 없는 월차·생리휴가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국제기준에 맞춰 우리의 근무·휴가 관행을 고쳐가는 것이 옳다. 그렇지 않아도 경제자유구역법안은 심의과정에서 지정요건 등이 완화돼 과연 그 정도로 외국기업들을 유치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중국과 아세안이 출범시킬 18억 인구의 FTA에서 우리가 소외되면 나라의 장래가 없듯, 중국 상하이(上海) 푸둥(浦東) 등의 경제특구를 능가하는 투자 유인(誘引)을 우리가 제공하지 않는 한 외국 일류기업들을 한국에 불러들일 길은 없다.

FTA나 경제자유구역은 다음 세대 근로자들이 더 고(高)부가가치의 근로에 종사할 수 있게 하기 위한 포석이다. 현 세대 근로자들의 이해에 얽매여 표류한다면 다음 세대 근로자들에게는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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