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증권배2002한국시리즈>삼성 20년 恨 풀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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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을 수 없는 결과였다. 인위적으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기적이었다. 누가 '야구는 9회말부터'라고 말했으며 스포츠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했던가.

스무해 긴 세월 동안 삼성의 가슴에 응어리졌던 한국시리즈 우승의 한(恨)도, 일곱번의 도전 때마다 따라다녔던 '우승 징크스'도, '달구벌의 저주'도, '져주기 악령'도, 그리고 '새가슴 논란'도 모두 사라졌다.

역대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극적인 끝마침이었다. 모두가 7차전을 예상했다. 3점차의 열세에 LG의 최종 마무리 이상훈. 그러나 승부는 정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미국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 요기 베라의 이 금언은 한국시리즈에서 다시 한번 살아났고, 섣부른 예견을 비웃었다.

9회말 선두 김재걸이 중월 2루타를 때리고 나간 뒤 강동우가 삼진으로 물러난 1사 후, 브리또가 볼넷을 골라 출루하면서 기적의 조짐이 대구구장을 감쌌다.

타석에는 이승엽. 이번 시리즈 들어 홈런이 하나도 없는 것은 물론 전타석까지 20타수 2안타의 빈타에 허덕이고 있는 그였다. 볼카운트 1-0에서 이상훈의 밋밋한 변화구가 가운데 약간 낮은 쪽으로 쏠렸다.

이승엽의 방망이가 특유의 부드러운 궤적을 그렸다. 타구가 방망이 끝을 떠나는 순간, 이승엽은 두 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자신의 슬럼프에 마침표를 찍고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는 극적인 동점 3점홈런이었다.

허탈해진 LG가 이상훈을 끌어내리고 최원호를 마운드에 올리는 순간, 동점홈런을 때린 이승엽은 대기 타석의 마해영에게 "하나 더!"라고 외쳤다. 마해영은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 직구를 힘차게 걷어올렸다. 타구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또다시 오른쪽 담장을 넘는 순간, 삼성 선수들은 모두 뛰어나왔고 LG선수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믿을 수 없는 랑데부 홈런. 메이저리그 역대 최강의 3,4번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도 만들지 못한 그런 짜릿한 끝내기가 이승엽과 마해영의 방망이 끝에서 만들어졌다.

파티는 그렇게 끝났고, 무대에는 삼성 우승의 진한 여운이 '앞으로 이보다 더 극적인 승부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으로 남았다.

대구=이태일·김종문 기자

pinetar@joongang. co. kr

◇한국시리즈 6차전 전적

▶대구(삼성 4승2패)

L G 030 103 020│9

삼 성 021 200 014│10

신윤호, 이동현(2), 유택현(4), 장문석(5), 이승호(8), 이상훈(8), 최원호(9):전병호, 배영수(2), 김현욱(4), 노장진(6), 강영식(9)

(승) 강영식 (패) 최원호 (홈) 최동수(2회 3점·LG), 박한이(2회 2점) 이승엽(9회 3점) 마해영(9회 1점·이상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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