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독에서 건진 예술의 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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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수입액이 세계 4위인 '주당(酒黨)들의 나라' 한국. 신간에는 숱한 이땅의 술꾼들이 '형님'쯤으로 모셔야할 전설적인 외국인 주당들의 얘기가 생생하다.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소개된 주당들이 모두 소설가나 시인, 화가라는 점이다.

또하나 요즘 사람들 보다는 1세기 이전 옛날 사람들이 많다. 책 표지에 작은 활자로 인쇄된 부제는 이렇다. '예술은 술에 얼마나 빚을 지고 있을까'. 따라서 신간의 초점은 술 먹고 망가지는 무용담이 아니다.

즉 예술가들의 오랜 벗인 술이 영감을 위한 묘약이면서 동시에 파멸로 이어지는 독약일 수도 있다는 '술의 두 얼굴'을 균형있게 다뤘다.

책에 따르면 음주는 한때 남성들에겐 여성과의 불장난과 같은 급의 멋진 쾌락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작가들에게 신체균형과 정신건강을 위협하는 위험물질 쪽으로 성격이 상당부분 바뀌게 된다. 술은 더이상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주신제(酒神祭)를 거론하며 옹호하던 황홀경을 알게 해주는 초자연적인 힘이 이상 아닌 것이다.

그러나 술은 역시 예술가들의 인공낙원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시인 보들레르가 시집 『인공낙원』을 펴냈듯이 술은 인공낙원을 건설하는 강력한 도구인 셈이다.

이를테면 20세기 전반에 활동했던 미국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작가 잭 케루악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술에 취해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책상 앞에 앉을 것을 권고할 만큼 음주 예찬론자였다. 저자는 과거 술에 빠진다는 것은 가치와 제도들을 전복하려는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었다며 '좋았던 옛날'을 아쉬워한다.

개인의 방황과 술에 바쳐진 각자의 삶에는 하나의 미학적 계획으로의 열림이, 구원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의 그런 탄식은 얼마전 "시인들이 더이상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일갈했던 시인 고은의 입장과 논리적으로 동일선상에 서 있다.

저자는 음주에 대한 작가들의 태도는 상습 음주·간헐적 음주·금주의 세가지로 나누고 있다. 마약에도 손을 댔지만 포도주를 지나치게 남용해 27세에 사망한 오스트리아의 시인 게오르그 트라클이나 알코올 중독과 방랑으로 점철된 생을 살다 39세에 죽은 웨일즈 출신의 딜런 토머스는 상습 음주의 늪에 빠져 파괴적인 종말을 자초한 경우다.

물론 예술가의 삶과 일반인의 삶이 같진 않을 것이다. 보들레르는 "끊임없이 취해야 한다.…술이건 시건 덕성이건 그대 좋을대로 취할 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문학은 술에 절어있고 작가들이 심지어 술을 주제로 글을 쓴다며 책머리에서 손님을 끌었던 저자는 책 말미에서는 작가들이 더이상 술이라는 테마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최신의 경향을 고백하는 것으로 후퇴한다.

알코올을 대체하는 마약의 유행, 혈중 알코올 농도를 수치로 보여주는 측정기의 도입은 요즘 술마시는 작가들을 '멸종된 종(種)'으로 몰아붙치고 있다는 것이다. 세태의 변화로 예술이 잃게 된 것은 영감, 환상의 영역일 것이다. 어찌됐던 이 책은 '술로 바라본 서구 지성사'로 읽힌다. 유쾌한 일화와 술꾼들의 일탈행각등이 '잘아진 우리시대'를 조망하기에 좋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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