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간 예산심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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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실상 증액 예산이다. "8일 내년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지켜보던 국회 관계자의 얘기다. 그는 "국회가 예산 심사를 안했다고 봐야 한다"는 말도 했다. 1995년 이래 최소 삭감률을 지적한 것이다. 대선을 눈 앞에 둬서인지 나눠먹기도 극심했다는 지적이다. 홍재형(洪在馨)예결위원장은 "짧은 기간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심의가 이뤄졌다"고 강변했지만 설득력은 없었다. 국회는 자체 9개 사업에 대해 56억원을 증액하기도 했다.

국회는 당초 정부안에 없던 54개 사업 예산을 증액했다. 대부분 지역 챙기기 성격을 띠고 있다.

<표 참조>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주변 지역 개발용역비(6억원), 백제문고 발간(2억원), 대구교대 다목적관 건립(14억원), 광주민주유공자단체 지원(1억원), 장수 승마장(15억원), 낙동강 에코센터 건립(5억원), 제주컨벤션센터(80억원)등이 그 예다.

예산안 조정소위 위원들의 입김이 느껴지는 증액도 있다. 부천 만화정보센터 운영비(崔善榮), 김제 문화예술회관(張誠源), 청주 무형문화재 전수회관 건립(洪在馨), 대구종합무역전시장(白承弘), 울산 산업단지 도로개설(權琪述)등이다.

교통특별회계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

예결위가 이날 통과시킨 부대 의견도 지역 간 배려를 했다. 하나는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지원과 관련, 국민체육진흥기금 2백71억원 외에 체육복권을 늘려 발행해 1백억원을 추가로 지원하도록 했다.

또 하나는 전남도청 이전과 관련, "광주 도심권 공동화 방지대책을 수립, 시행하라"고 했다.

일반회계 기준으로 보면 순삭감폭은 1천6백54억원에 그친다. 주된 삭감은 일반예비비와 재해대책 예비비로 각각 2백억원과 2천억원을 삭감했다.

올해 수재로 인해 4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한 것을 감안하면 언제든 또 추경을 해야 할 상황이 될 수 있다.

또 공공자금 예수금 이자 상환(2백28억원), 비료계정 적자 보전(10억원), 교육차관 이자(41억원)등도 금리가 오를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삭감을 감안하면 사업 예산에 대한 실질적인 삭감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심지어 내년 예산을 올해 미리 써버리도록 한 것도 있다. 국회는 내년 예산으로 신청한 수재 지원 3천억원을 올해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 예비비와 지방재정특별교부금으로 1천5백억원씩 지원하라는 부대의견을 달았다. 편법 증액인 셈이다.

기획예산처는 그간 예산안 기준을 일반회계로 삼았다.

그러나 이날 국회와 기획예산처는 순삭감폭을 2천4백40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해 발표한 것이다. 세출 삭감 1조2천3백억원, 세출 증액 9천8백억원도 모두 같은 기준으로 했다. 그러면서 세부 증액·삭감액 내역도 모두 합쳐서 냈다.

이에 대해 예결위 관계자는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한 삭감폭도 예년 일반회계만의 삭감폭에 못미친다"며 "이를 숨기고 삭감폭을 늘려 보이기 위해 일부러 자료를 섞어 놓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고정애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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