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갈 데까지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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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러고도 국회의원으로 대접받기를 바라는가. 엊그제 열린 국회 본회의가 의결 정족수 미달로 안건 처리를 중단하더니 어제는 정족수 미달 상태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해괴한 사태까지 발생했다. 사실상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8일 하루만이라도 제대로 된 국회 운영을 기대했지만 정족수 미달 상태의 법안 처리로 위헌 시비까지 낳는 등 국회가 갈 데까지 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가뜩이나 대선을 이유로 한달 단축 운영되는 정기국회여서 졸속이 우려됐다. 그렇다면 국민의 우려를 덜기 위해서라도 한층 분발하는 게 마땅했다. 하지만 분발은 고사하고 국회를 아예 외면함으로써 지난 9월 2일 개회 이래 단 한건의 법안 처리도 못했고, 예년의 막바지 처리 건수의 2∼3배를 벼락 통과시켜야 하는 한심한 상황을 만들었다. 탈당이니 후보 단일화니 하며 본연의 임무는 뒷전으로 미룬 채 대선 싸움에 끼어들어 시일을 허송했던 국회의원들이다.

그러노라 7일 하루 동안에만도 법률안 64건 등 76건을 처리해야 했고, 법사위는 본회의 진행 도중 각 상임위가 허둥지둥 넘긴 60여건의 법안을 심의해야 하는 딱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런데 이마저 부족했는지 8일에도 98건의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족수 미달 사태를 재연한 것이다. 헌법 제49조는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토록 하고 있다. 당시 본회의장에는 70여명의 의원만 있었던 만큼 헌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는 정족수 미달 상태로 통과된 10여개 법안에 대한 위헌 시비가 일자 "국회법상 회의장은 본회의장 바깥의 휴게실과 복도를 포함한다"는 말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국회가 법을 어겨서는 안된다. 국회 본회의 의결이 형식적 측면이 없지 않지만 입법의 엄숙성과 권위를 담보하기 위해 규정한 만큼 지킬 것은 지켜야 한다. 구차한 변명조의 억설을 늘어놓을 게 아니라 정식 절차를 밟아 재의결하는 게 위헌 시비를 일소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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