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 테러리스트 걸음걸이로 잡아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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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7면

2003년 영국 런던의 히드로 국제공항. 출장간 金모씨가 입국신고를 한다. 하지만 출입국관리원에게 여권을 내고,도장을 받고 하는 과정은 없다. 단지 작은 카메라에 약 1초 정도 눈을 바짝 갖다 댔다 떼는 것뿐. 몇초 뒤 모니터에 김씨의 신상정보와 '영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메시지가 뜬다. 눈동자의 홍채를 보고 신원을 파악하는 시스템이 입국 처리를 자동으로 마친 것이다.

2007년 인천국제공항. 李모씨 가족이 해외여행에서 돌아왔다. 이번엔 홍채인식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절차도 없다. 단지 길이 7∼8m 정도의 한 줄로 서서 걸어야 하는 통로를 거칠 뿐이다. 그 사이에 걸음걸이로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시스템이 이미 입국 처리를 했다.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다. 홍채 인식 시스템은 이미 히드로 공항 등 몇몇 국제공항에서 활용하고 있다. 걸음걸이처럼 멀리 떨어져서도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새로운 생체 인식 기술이 속속 나오고 있는 것이다.

걸음걸이에 의한 신원 파악은 걷는 속도, 보폭, 무릎이 구부러지는 각도, 허벅지가 윗몸과 이루는 각도 등이 사람마다 각각 다른 것을 이용한다. 사람의 움직임을 카메라가 찍고 컴퓨터가 분석한 뒤 미리 입력된 개인별 걸음걸이 자료와 비교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최근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팀은 걸음걸이 신원확인이 95%의 정확도를 보이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걸음걸이 신원 파악 기술은 테러 위험을 크게 줄일 수 있어 미국 첨단국방기술연구소(DARPA)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 이용하면 테러리스트가 목표물에 접근하기 전에 멀리서 걷는 모양새를 보고 요주의 리스트에 오른 인물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홍채 인식 시스템 등은 테러리스트가 카메라에 눈을 댈 정도로 가까이 와야 구분할 수 있어 테러를 사전에 막기 어렵다.

또 은행 강도가 들었을 때 감시 카메라에 얼굴은 잘 잡히지 않았더라도 움직이는 모습이 잡혔으면 걸음걸이 분석으로 범인을 잡을 수 있다.

DARPA와 공동연구를 하고 있는 영국 사우스햄튼 대학 마크 닉슨(컴퓨터 공학) 교수는 "현재 여러 사람이 뒤섞여 움직일 때도 컴퓨터가 각각의 움직임을 분리해 신원을 파악하게 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이것이 성공하면 도심의 군중 속에서도 누가 누구인지 컴퓨터가 알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홍채 인식은 1백% 정확하게 신원을 파악할 수 있으면서도 위조 가능성이 거의 없어 공항·은행 등에서 서서히 실용화되고 있다. 지문은 위조할 수 있다는 게 보안전문가들의 견해다.

최근에는 미국의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1985년 아프간 난민촌에서 찍은 얼굴사진의 주인공<사진 참조>을 홍채 분석으로 찾아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12세였던 소녀는 17년이 지난 올해 얼굴 모습이 많이 변했지만 홍채는 정확히 일치했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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