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갑의 스티비 원더, 1만여 팬 가슴에 불 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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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눈을 감은 노래’가 잔뜩 찌푸린 서울 하늘을 감싸 안았다. 10일 오후 8시30분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시각장애인 팝스타 스티비 원더(60)의 내한 무대가 펼쳐졌다. 이날 공연장 둘레엔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팝의 거장을 맞이하려는 한국 관객들은 굵은 빗줄기를 뚫고 공연장으로 몰려들었다. 1995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한국 공연은 티켓 발매 1시간 만에 전석 매진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콘서트 직전 인터넷에선 암표 값이 9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스티비 원더가 10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15년 만의 내한공연을 했다. 한국 팬 1만여 명이 모여 사랑과 평화의 노래에 심취했다. 환갑을 맞은 거장도 녹슬지 않는 열창으로 화답했다. [현대카드 제공]

콘서트는 예정보다 30분 정도 늦게 시작됐다. 1만여 객석을 빼곡이 채운 관객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살아있는 팝의 전설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순간 조명이 꺼졌다. 수백 개의 야광봉이 출렁이고 있을 때, 스티비 원더가 전자 키보드를 두드리며 등장했다. 검은 선글라스를 낀 그는 ‘마이 아이즈 돈 크라이(My Eyes Don’t Cry)’로 무대를 열었다.

거장의 보컬은 과연 아름다웠다. 올해로 예순에 이른 그의 목소리는 세월과 더불어 더욱 단단해져 있었다. 음색은 강렬했고 감미로웠으며, 듣는 이의 마음을 내내 파닥거리게 했다. 전 세계적으로 7500만 장의 앨범을 팔았고, 그래미상만 모두 스물다섯 차례 수상한 이력이 괜한 게 아니었다.

열한 살에 데뷔 앨범을 낸 그는 올해로 노래인생 48년차를 맞이했다. 반백 년 빚어온 숱한 히트곡 가운데 27곡이 이날 공연장을 들뜨게 했다. 스티비 원더 특유의 카랑카랑한 음색이 실리자 1만여 관객은 환호성과 박수를 거듭 쏟아냈다.

특히 그의 전성기였던 1970~80년대 히트곡들이 나올 땐, 40~50대 중년 관객들이 눈을 지긋이 감은 채 추억 속으로 젖어 들었다. ‘이즌 쉬 러블리(Isn’t She Lovely)’ 등 추억의 명곡이 흐르자 관객들이 일제히 노래를 따라 부르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스티비 원더는 신시사이저를 통한 사운드 혁신을 주도해왔다. 이날 무대에서도 신시사이저를 직접 연주하며 인상적인 사운드를 선보였다.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리듬을 보조하기도 했다. 그는 ‘포 원스 인 마이 라이프(For Once in My Life)’ 등에서 하모니카 솔로를 뽐냈고, 키보드를 잡았을 때는 누운 채 연주를 이어가기도 했다.

그의 발라드는 온 객석을 눅눅한 감성으로 젖어들게 했다. 스티비 원더는 ‘레이틀리(Lately)’ 등 발라드 곡을 이어가다 코끝을 시큰거리기도 했다. 감성적인 발라드가 끝난 뒤 그는 선글라스 아래로 손가락을 넣어 눈물을 훔쳐내며 “감사합니다”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무대를 내려가기 직전 “사랑합니다”란 우리말로 즉흥 곡을 부르기도 했다.

스티비 원더는 지난해 말 유엔 평화대사로 임명됐다. 노래를 통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도 열심인 그는 이날 한국 관객들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세계는 평화를 통해 소통할 수 있습니다. 남한과 북한도 한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스티비 원더-. 그는 일평생 눈을 닫은 채 살아왔지만, 노래를 부르는 순간만큼은 세상을 활짝 열어젖히는 뮤지션임에 분명했다. 폭염과 장마가 들끓은 서울의 8월 밤을 음악으로 씻어 내렸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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