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이민자 '서구식 改名'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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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0여년 전만 해도 프랑스 내 이슬람계 이민자 자녀 열명 중 두명의 이름은 모하메드였다. 나머지도 대부분 하림·메디·사미르·라시드·무스타파 등 전통적인 이슬람권 이름을 물려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향이 완전히 달라졌다.

프랑스 국립통계청(INSEE)의 기 데플랑크 인구통계부장은 최신 저서 『인기있는 이름』에서 "이슬람계 이민자 자녀들의 이름에서 이슬람 색채가 사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주목할 만한 경향은 이름의 '잡종화'다. 이슬람과 서구 문화가 합성된 이름이 유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카리아·일리에스·야니스·아멜리아 등이 그런 이름들이다. 그중에서도 최근 가장 선호되는 이름은 라얀(Rayan)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전혀 존재하지 않던 이 이름은 아랍어로 '잘생긴' 또는 '꽃다운 나이'라는 뜻이다. 뜻도 좋지만 라얀이 인기있는 진짜 이유는 앵글로색슨 계통의 이름인 '라이언(Ryan)'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리스와 이탈리아 이름을 연상시키는 야니스와 아멜리아도 아랍어와 발음이 비슷한 이름들이다. 일리안은 아랍과 러시아·독일·라틴계 문화가 섞인 이름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복합 이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하림알렉상드르·라시드니콜라처럼 아랍과 프랑스 이름을 이어붙인 경우다. 이같은 복합 이름들은 짓기도 쉽고 선택의 범위도 넓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이같은 경향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민 역사가 깊어지면서 문화통합이 이뤄진 결과"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튀니지 출신의 프랑스인 모하메드 슬라(49)는 "학교에서 튀지 않도록 두 딸의 이름을 아멜리아와 마엘이라고 지었다"고 털어놨다. 이름 때문에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직장을 구하고 집을 얻는데 불리함을 겪지 않도록 하겠다는 배려다. 요즘처럼 이슬람과 테러집단이 동일시되는 현실에서는 그의 말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아랍색이 짙은 모하메드나 전형적인 프랑스 이름인 폴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이름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 유치원생 일리안의 엄마인 야스미나(23)의 이 말은 사회적 차별을 피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도 간직하려는 이슬람권 이민자들이 타문화권에서 사는 법을 대변하고 있다.

cielble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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