黨派의 눈으로 보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검찰의 고문 치사 사건은 다면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어떠한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피의자 인권보호라는 측면에서 고문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고,더구나 그로 인해 죽기까지 했다는 것은 검찰로서는 입이 백 개 있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조직폭력배 일원으로 잔인한 살인의 혐의를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흉악한 범죄조직원으로서 고분고분 검찰의 신문에 응하지 않았으리라는 점, 이 사회의 공권력이 조폭의 횡포에 무력해 있었다는 점 등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양면성에다가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한 요소가 더 추가돼 있어 우리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당파성이다.

우연히도 이번 사건의 책임계통이 지난 병풍(兵風)처리 지휘선과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병풍의 무혐의 처리에 불만이 있는 측은 차제에 지휘 라인의 모두를 갈아치우고 싶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쪽에서는 최소의 책임만 지우고 지휘 라인을 살린 채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어 할 것이다. 양쪽은 모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기논리를 만들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정의롭게 처리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요즈음 들어 우리 사회는 이러한 당파적 판단에 매우 길들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를 판단하는 시각이 공정성에 근거하기보다는 자신이 속하거나 지지하는 정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병풍만 보더라도 이를 폭로한 사람을 놓고 한쪽은 의인이라고 치켜 세웠고, 다른 쪽은 형편없는 전과자의 무고(誣告)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국민들도 자신이 지지하는 정파에 따라 반응이 갈린다. '무엇이 진실이고 공정한 것인가'보다는 자신의 당파적 노선에 따라 한쪽 목소리는 아예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편의 목소리로만 자신의 판단을 강화해 가는 것이다.

국회 국방위에서 정보부대장이라는 사람이 군 기밀 서류를 공개적으로 흔들어대며 이 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난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부를 싫어하는 쪽은 박수를 보냈고 그가 마치 의인이나 되는 것처럼 치부했다. 그러나 한발 더 들어가 보면 과연 정보부대장의 그러한 처신이 옳은 것인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가의 기밀을 그렇게 흔들어대도 우리 안보에는 지장이 없는 것인지, 그것이 정말 애국심의 발로인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서 불의를 못참겠으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국가 비밀 서류를 흔들어댈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시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이러한 경거망동도 이 정부를 싫어하는 쪽에서는 훌륭한 폭로를 했다고 무조건 치켜준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국장까지 지냈다는 야당의원의 연이은 폭로 역시 비슷하다. 그는 국정원의 관계자들이 몰래 빼다 갖다준 도청서류로 이것 저것을 터뜨리고 있다. 야당이나 이 정부를 반대하는 측에는 그가 대단한 인물이고, 보배로운 존재일지 모른다. 또 그것으로 이 정부가 혼쭐이 나니 고소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정보기관의 종사자들이 이러한 처신을 하도록 조장하고 부추기는 것이 국가를 위해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별 의식이 없다. 그렇게 정파 꽁무니를 좇는 국정원이라면 야당이 집권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왜 모르는가. 자기 정파의 집권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이러한 당파성 때문에 국가의 기간조직은 무너지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당파에 눈이 멀어 있는지 모른다. DJ가 미운 사람은 무조건 이 정부가 안되는 쪽에만 박수를 치고, 이회창이 미운 쪽에서는 그를 선거에서 패배시킬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서슴지 않을 자세다.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되고는 아무 생각이 없다. 이런 일로 권력을 쥐고, 놓치는 쪽에서는 권력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겠지만 왜 국민들까지 덩달아 무조건 미워하고 무조건 박수를 쳐야 하는가. 그들은 자기 식으로 국민을 갈라 놓아야 집권에 유리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집권을 위해 국민들은 왜 덩달아 춤을 추어야 하는가.

각자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한다. 자기 자리에서 당파의 눈이 아니라 공공(公共)의 눈으로 어떤 것이 나라를 위해 옳은 것인가를 판단해야 한다. 이번 검찰의 고문치사 사건도 무엇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옳은 것인가로 판단해야 한다. 당파의 눈으로 이를 확대 재생산하지 말아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