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문명교류사의 '1호 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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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중심의 역사관에서 중국을 포함한 동양은 정복하고 길들여야 할 '타자'일 뿐이다. 동양을 타자화한 결과는 20세기 초반까지 진행된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탈일 것이다.편향된 역사관을 지양, 보편적인 차원으로 세계사를 되돌리는 작업이 문명교류의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하자는 문명교류사가 겨냥하는 바다. 동양은 더이상 서양에 의해 '발견'된 것이 아니고 어떤 역사적 시점에 '교류'를 시작한 동급으로 자리매김된다.

『씰크로드학』 『세계 속의 동과 서』 등 기존 저작을 통해 교류라는 키워드를 꾸준히 천착해온 역자는 아직 국내 학계에 생소한 분야인 문명교류사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신간 번역에 도전했다.

국내 번역이 늦어졌을 뿐, 한세기 전인 1866년 당대 동양학의 권위 헨리 율이 집필한 원전 『중국과 거기로의 길(Cathay and the Way Thither)』은 문명교류사의 1호 고전으로 꼽힌다. 신간을 제대로 삭이기는 쉽지 않다. 율이 최초 집필한 본문 분량에 육박하는 세밀한 주석과 추가 자료를 보저자(補著者) 앙리 꼬르디에가 60년 뒤 덧붙였고 일본어 번역본의 추가 주석, 역자의 새로운 주석 등이 따라붙어 주석의 분량이 본문을 능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역자는 4권으로 구성된 원전의 1권만을 번역했을 뿐이다. 원전의 방대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문명교류사의 입문 개설서에 해당할 신간은 중국에 대한 그리스·로마인들의 지식, 로마 제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지식, 중앙아시아를 통한 동서 교통,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의 중국 전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 항로를 발견한 1497년 이전까지의 시기가 대상이다. 다양한 여행기와 서한·연구서를 집대성한 신간의 본문과 주석을 넘나들다 보면 동·서양 교통의 역사가 뚜렷한 실체를 드러낸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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