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천금 같은 것! 새삼 仁術 일깨워준 로빈 쿡의 『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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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초등학교 때였던가? 아버지에게 끌려가 포경수술 당한 날 위로차 사다주신 『슈바이처 위인전』(삼성출판사)은 나도 커서 훌륭한 의사가 돼야겠다는 꿈을 키워준 책이었다. 그 책 덕분인지 내가 안과 의사가 된 후 읽은 『코마』(로빈 쿡 지음, 열림원)는 가장 근본적인 생명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우쳐 주는 책으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유일하게 내가 로빈 쿡이란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가 나와 같이 글도 쓰는 안과 의사라는 것과, 그가 쓴 책이 『염색체』나 『복제』와 같은 인체와 관련된 테크노 스릴러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겉핥기 의학의 단순히 엽기적이고 현란한 간접체험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생명존중과 도덕성이란 기본적인 이념에 있다.

그래서 밤늦도록 그의 소설에 탐독하다 보면 여름에는 에어컨이 없어도, 겨울에는 후끈후끈한 난방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박진감 넘치는 긴장감과 때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이 소설처럼 장기이식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히포크라테스에서부터 시작된 여러 의사들의 경험과 착오로 인한 피와 땀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열림원을 통해 시리즈로 나온 로빈 쿡의 테크노 메디컬 서스펜스물들인 『돌연변이』 『Genom』 『휴먼바디샵』 『DNA』 『제3의 바이러스』 등을 관심있게 읽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 픽션의 소설 공간에서 차용되는 전율과 상상의 날개는 내 의사생활 속에 신선함을 불어넣어준다.

이외 『의학사의 숨은 이야기』(예병일 지음, 한울)란 책은 히포크라테스에서 시작한 서양의학이 중세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전해온 궤적을 인물 중심으로 살펴본 일종의 의학사다. 쌀쌀한 바람이 유리창 너머로 들어오는 오후,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히포크라테스 동상을 보며 기도한다. 인간복제도 가능한 요즘 시대에 히포크라테스 할아버지보다 내 의술이 훨씬 앞섰을지는 몰라도, 인술은 아직도 모자라니 "오! 히포크라테스 할아버지시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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