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리뷰] 시선의 모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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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시선의 모험
장-루이 페리에 지음, 염명순 옮김
한길아트, 464쪽, 2만원

장-루이 페리에(프랑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로 치면 미술평론가 이주헌씨쯤 되는 인물이다. 머리 속에 백과사전이 들어앉은 듯 박학한 지식을 바탕으로 쉽고 재미있는 미술책을 여러 권 썼다. 그가 쓴 '피카소의 게르니카''20세기 미술의 모험'은 대중의 미술 사랑을 불러일으키며 중요 저술상을 휩쓸었다.

이 책은 '30점의 명화를 즐기는 세 가지 시선'이라는 부제 그대로 서른 점의 그림에 대한 꼼꼼한 해설과 대화를 담았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림을 '보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의 사명감은 투철해 보인다. 이론이나 화파 같은 골치 아픈 대목은 구수한 생활이야기로 책을 끌어간다. 뜬구름 잡는 감상 대신 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이 그의 서술재료다.

귀스타브 쿠르베의 '오르낭의 매장'을 설명하면서 그림에 나타난 오르낭 주민 46명의 이름을 줄줄이 꿴다. '미술에 등장한 민주주의'라는 글 제목이 저절로 이해된다.

문장도 친구랑 떠드는 기분이 들만큼 솔직담백하다.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 첫 머리는 "이게 무슨 해괴한 장난이며, 음란한 짓거리며, 추잡한 수작인가!"로 들어간다. 르네상스 이후 서양미술사를 '보이는 세계의 발명' '재현의 수단 회화' '시선의 해방' 세 시기로 나눠 훑어가는 지은이의 입담은, 그림이 때로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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