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눠먹기 인심쓰기' 예산심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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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로 'D-50'일인 12월 대선은 증오와 경멸의 정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막가파식 폭로와 배째라식 반박'의 악순환 속에 사생결단의 대결 양상은 더욱 거칠어지고 있다. 각 후보 진영은 건전한 정책 대결을 외치지만 속으론 상대방 흠집내기의 소재 찾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런 분위기가 반영된 곳이 어이없게도 국회의 예산심의 현장이다.

정책 이슈가 뒷전으로 밀리자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 개발, 이해(利害)가 얽힌 예산을 늘리려는 선심성 증액에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민의 혈세를 눈먼 돈처럼 타내 '나눠먹기, 인심쓰기'에 골몰하고 있다. '정책 실종(失踪) 대선'이 낳은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선심의 규모와 배경을 따져보면 한심하다. 16개 상임위에서 정부 예산안을 먼저 심사하면서 4조원을 늘려 예결위에 넘겼다. 이는 지난 5년간 상임위 심사과정에서 통상적인 증액(정부안 대비) 비율보다 두배(3.7%)가 된다. 극심한 예산 끼워넣기와 담합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과거엔 쓸데없는 게 많다고 대폭 깎으려 했던 청와대와 국정홍보처의 예산을 그대로 두거나 늘려줬다고 한다. 이를 놓고 내년에 집권당이 될 것을 감안한 '김칫국 마시기'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예산을 삭감하다간 표를 잃을까 적당히 넘기려는 자세는 민주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더욱 어처구니 없는 대목은 '자기네 몫'인 국회 관련예산의 증액이다. 여성의원용 사우나 설치비(5억원)와 의정보고서 인쇄비(13억원)가 가볍게 끼워졌다고 한다. 이런 식이라면 최악의 졸속·부실 심의가 될 수밖에 없다. 다음달 8일까지 진행할 예결위만이라도 정신차리고 예산안을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각 후보들은 정책 경쟁선거, 민생우선 선거의 출발점이 짜임새 있는 예산안 심의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새 정책을 개발하거나 남의 정책을 베끼는 데 신경쓰기보다 있는 것(예산안)부터 제대로 해야 정책 경쟁의 분위기가 잡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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