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때 오늘

해외 순회공연으로 보은한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1960년 8월 22일 창단 당시의 선명회 어린이 합창단. 선명회가 운영하는 151개 고아원에서 선발된 남녀 어린이로 구성된 혼성 합창단은 1만3000명의 고아들을 대표해 도움의 손길을 내민 해외의 후원자들에게 보은의 노래를 되돌려주는 해외공연을 펼쳤다.

피를 나눈 동족들이 총부리를 서로의 가슴에 겨눈 6·25 전쟁이 터진 1950년. 폐허가 된 거리에는 부모를 잃은 고아들의 울부짖음과 가장을 잃은 미망인들의 한숨 소리가 흘러넘쳤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로 인해 나의 마음도 아프게 하소서!” 그때 이 땅에 왔던 밥 피어스(Bob Pierce, 1914~1978) 목사는 우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였다. 그해 그는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모든 사람, 특히 어린이들이 잘 살 수 있도록 일하는 것(working for the well being of all people, especially children)”을 목적으로 한 월드비전(World Vision)을 설립했다.

그는 한경직 목사와 손잡고 이 땅에 선명회(宣明會)를 세워 돌보는 이 없는 고아들을 품 안에 거두고 미망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전쟁의 참화로 죽거나 다친 이가 약 129만 명, 포화를 피해 정든 땅을 떠나 남녘으로 온 이들이 100만 명을 웃돌던 1950년대. 전쟁의 와중에서 가장을 잃은 미망인이 30만이 넘었고 부모를 잃은 고아들도 10만을 헤아렸다. 우리 경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외국 원조에 의해 순환이 이루어졌던” 그때. 미국이 준 원조와 잉여농산물로 보릿고개를 넘고, 구제품(救濟品)으로 몸을 가리던 우리 시민사회는 이웃의 고통을 보듬을 여력이 없었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이 땅의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한 1960년 8월 22일. 한국 선명회는 산하 고아원 원생들로 구성한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었다. “선명회 어린이 남녀 혼성 합창단 단원 32명이 미국 및 캐나다 등지의 40개 도시에서 우리나라 민요를 비롯해 동요·세계명곡을 노래하기 위해 16일 오후 3시45분발 NWA기 편으로 미국으로 향하였다. 한국 선명회의 후원을 받고 있는 이들 어린이 남녀 혼성 합창단은 전국 151개소의 고아원 원아 1만3000명 중에서 선발했다고 하며 8세에서 12세의 어린이들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1961. 10. 17)

이듬해 어린 천사들은 감사의 마음이 담긴 노래로 바다 건너 후원자들의 나눔에 보은의 되돌림을 행했다. 당시 이들은 우리를 도운 이들에게 아이들의 노래밖에 되돌릴 수 없었던 우리 시민사회의 고마움을 전한 꼬마 친선대사들이었다.

6·25 전쟁 때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21개 유엔 회원국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불과 반세기 만에 경제적 번영과 다원화된 풀뿌리 시민사회를 일굴 수 있었다. 세계에 빚진 자인 이 땅의 사람들 모두는 고통받는 지구 마을의 이웃들에게 단비와 같은 한 바가지 마중물을 되돌려야 할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소명을 띠고 있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