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 첫 만남 정몽준-이익치 20년 악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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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익치(58)전 현대증권 회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정몽준(51)의원에 대해 현대전자 주가조작 연루 의혹을 제기, 두 사람 사이의 20년에 걸친 악연(?)이 이어지고 있다.

두 사람은 현대그룹 시절부터 재계에서 보기 드물게 원만치 못한 오너와 전문경영인 관계였다. 서로 현대를 떠난 뒤에도 악감정을 누그러뜨리지 못한 채 과거까지 들춰내며 공방을 벌이고 있다.

원래 현대 창업자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두 사람을 가장 아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를 못할 만큼 앙숙 관계였다.

鄭의원은 1982년 파격적으로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에 올랐다. 같은날 李전회장은 중공업 관계사인 현대엔진공업의 전무로 승진, 두 사람은 사장과 임원으로서 첫 만남이 이뤄졌다.

당시 李전회장은 사장실을 들락거리며 시키지도 않은 보고를 했다는 게 鄭의원 비서 출신 인사들의 증언이다. 鄭의원은 이를 못마땅해 하면서 "당신은 화장실 갔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을 보고하지 마시오"라고 李전회장에게 면박을 줬다.

鄭의원은 李전회장이 현대화재해상보험·현대증권 등으로 옮긴 뒤에도 그를 여전히 곱지 않게 봤다. 지금도 鄭의원은 그가 아버지(鄭명예회장)와 형(정몽헌 회장)을 등에 업고 무리하게 대북사업과 금융사업을 추진하는 등 전횡을 일삼았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鄭의원은 형제 회장간 재산권 분쟁인 이른바 '왕자의 난'도 李전회장 때문에 일어났다고 봤다. 鄭의원 소유인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가 현대상선으로 바뀌어 형인 몽헌 회장측이 이를 빼앗으려고 시도한 것도 李전회장의 계략이었다고 비난했다. 李전회장 때문에 어려서부터 사이가 좋았던 바로 윗형인 몽헌 회장마저 소원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할 정도다.

또 현대중공업측이 현대전자 보증문제로 현대전자와 현대증권 등 법인뿐 아니라 李전회장까지 고소한 것도 이런 악감정과 무관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李전회장은 "장수(몽헌 회장)를 쓰러뜨리려면 먼저 말(자신)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또 鄭의원에 대해 "인정머리가 없고 싸가지도 없다"고 측근들에게 인물평을 하기도 했다.

李전회장은 결국 '왕자의 난' 등 현대사태의 책임을 지고 2000년 9월 현대를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 뒤 2001년 3월 鄭명예회장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李전회장이 귀국했을 때는 鄭의원이 "저 사람은 여기 왜 왔느냐"고 소리를 질렀다는 게 유족들의 설명이다.

이번엔 李전회장이 대선에 나선 鄭의원의 뒷다리를 다시 잡고 있다. 그는 28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현대중공업이 국회의원 선거 때 인건비나 추석·연말 상여금을 얼마나 지급했는지를 살펴보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올 것"이라며 "鄭후보는 검증받을 사항이 더 있다"며 추가 폭로를 시사하고 있다.

그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鄭후보에게 대통령에 출마할 생각을 버리라고 했다"며 "鄭명예회장의 유지를 거스르고 있는 鄭후보에 대해 끝까지 검증을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또 정치권과의 관련설에 대해 李전회장은 "이회창 후보와는 별로 사이가 안 좋다"며 일축했다.

이에 대해 鄭의원측도 법적 응징에 나섬으로써 두 사람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는 모습이다.

김시래·남윤호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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