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파문]美 오피니언 그룹도 北核해법 시각차 대화 우선 ↔ 군사력 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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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핵 문제를 놓고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 안에서 강온파가 대립하듯이 미국 대외정책의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서도 강온파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외교력·협상력·군사력 등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 저지해야 한다는 데는 강온파가 따로 없지만 동원할 수단의 우선순위에서는 입장차가 드러난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를 주도했던 빌 클린턴 행정부의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역대 공화당 안보정책의 대부(代父)격인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온건파와 강경파를 각각 대변하고 있다.

◇페리의 온건론=페리는 20일자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을 통해 제네바 합의가 없었다면 북한은 영변 원자로를 통해 지금까지 50기 이상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생산했을 것이라며 제네바 합의의 의미를 강조했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의 유지를 위한 외교적 협상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엄청나고도 긴급한 위협'으로 여겨지는 플루토늄 재처리를 통한 핵 개발과 달리 이번 경우는 핵무기 제조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와 우방국들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모든 측면을 검토해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군사적 대비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94년 북한 핵 위기 당시 미국은 만반의 군사적 준비를 갖췄으며 이를 통해 역설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는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 냈다는 얘기다. 당시 미국은 영변 핵시설에 대해 레이저로 유도되는 정밀조준 공격을 언제든지 실행할 수 있는 단계였고, 핵시설을 완전 폭격해도 방사능 유출에 따른 피해는 거의 없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제네바 핵 합의를 파기하기보다 확대·준수하는 편이 나으며, 이를 위해서는 확고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인내를 갖고 외교적 압박을 가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키신저·브레진스키의 강경론=키신저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20일 CNN의 대담프로에 출연해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피력했다.

브레진스키는 "북한은 일본까지 사정권에 둔 수백기의 미사일 발사 능력을 갖춘데다 핵무기까지 사실상 보유한 상태이므로 군사적 능력으로 보면 이라크보다 훨씬 위험한 존재"라고 지적했다. 그는 94년 이후 북한이 비밀리에 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다는 것은 제네바 합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만 아니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사찰 문제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미 행정부와 의회가 이라크에 대해 지금까지 보여온 입장보다 더 강경하거나 최소한 같은 수준으로 북한 문제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키신저는 한술 더떠 "궁극적으로 북한에 대한 군사력 사용이 필요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브레진스키는 "북한 핵 문제는 단순히 대화하고 협상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북한이 핵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무장해제를 할 수밖에 없도록 즉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압력을 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만약 이 방법이 실패하면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키신저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는 외교·경제적 압력에 중점을 두고 이라크에는 군사위협에 중점을 두는 이중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부시 행정부는 같은 전략의 각각 다른 단계를 추구하는 중"이라며 "북한에 대해서는 과거 이라크에 적용했던 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하는 단계이고, 현재 대(對)이라크 전략은 국제사회가 유엔 합의를 준수하고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단계에 와 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joon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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