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적인 뮤지컬 장면들 눈에 선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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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시절, 영화로 본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충격이었다. 즐겨 듣던 록 음악으로 그려낸 예수의 일생이라니. 청춘과 반항의 음악인 록이, 성가가 제격이라고 생각했던 예수의 일생에 어우러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록그룹 후가 만든 록 뮤지컬의 고전 '토미'보다도 놀라웠다. 이후 '헤어'를 보기 전까지,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내가 아는 뮤지컬의 정상이었다. 이 뮤지컬에는 유다와 예수의 격정적인 노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감미로운 목소리의 마리아가 '아이 돈트 노 하우 투 러브 힘(I Don't Know How To Love Him)'을 불러줄 때는 정말 그 무릎에 누워있고 싶었다.

그때 처음 들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이름이 됐다. 이렇게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드라마틱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곡가가 또 있을까? '오페라의 유령'의 서곡을 들었을 때는, 수없이 많이 각색된 영화판 '오페라의 유령'보다도 분명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극장의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유령'의 모습을, 격정과 정열의 화신인 유령의 감정을 만질 수 있었다. 요즘 작품에서는 약간 나른해진 듯 하지만, 예전에는 '에비타''캐츠'등 작품을 가리지 않고 웨버의 음악은 언제나 드라마틱하게 관객을 포섭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장면들이 머리 속에서 흘러갈 정도였다.

웨버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직접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돈과 시간의 제약이 있으니 음악을 듣고 싶을 때마다 갈 수는 없다. '오페라의 유령'이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와 같은 뮤지컬을 통째로 담아놓은 음반이 첫번째 대안이다. 뮤지컬을 보았다면 그 음반을 들을 때마다 무대의 상황이 유려하게 펼쳐진다. '보이지 않는 소리는 뮤지컬의 음악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한 웨버의 말처럼, 그의 음악은 드라마틱하게 상황을 그려낸다. 음반 한장으로도 뮤지컬의 느낌을 되살릴 수 있다.

다음의 선택은 히트곡을 모은 컴필레이션이다. 박스 세트 '나우 앤드 포에버(Now & Forever)'를 먼저 권하고 싶다. 그게 부담스러운 사람들에겐 '골드(Gold)'가 적당하다. 웨버의 곡 가운데서도 이본느 엘리만·줄리 커빙턴·마이클 크로퍼드 등이 부른 가장 유명한 버전들을 주로 모았다.

최근 '마스터피스(걸작·Masterpiece)'란 제목으로 나온 웨버의 음반은 지난해 6월 베이징에서 열렸던 콘서트의 실황 음반이다. '오페라의 유령''캐츠''에비타' 등 웨버의 뮤지컬에 나왔던 히트곡을 들을 수는 있지만, 가수의 중량감이 떨어지는 게 흠이다. '캐츠'의 원조 그리자벨리였던 일레인 페이지가 나오는 것은 위안거리다.

대중문화평론가

lotusid@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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