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 만드는 화장품은 없다" 바디샵 사장의 고집과 도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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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벨에 어떤 화학공식이 나와 있든 가슴을 크게 만들어 주고 허벅지를 가늘게 만들어 주는 크림은 없다. 제조업체가 뭐라고 주장하든, 어떤 샴푸도 갈라진 모발을 치료해 주지 못한다… 50세 여성에게 젊음을 되돌려 줄 수 있는 크림 같은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정말 주름살을 갖고 싶지 않으면 오래 전에 웃음을 그쳤어야 한다."

이런 도발적 주장을 읽으면 기분이 어떨까? 그것도 50여개국에 1천8백여 매장을 가진 세계 굴지의 화장품회사 창업자가 그런다면?

이 책은 '바디샵'창업자 아니타 로딕의 자전적 에세이집이다. 번역판 제목은 혼이 깃든 경영이란 뜻을 담았지만 내용은 이단적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책의 원제인 '유별난 기업'(Business As Unusual)이 훨씬 내용에 어울린다. "현재와 같은 추세면 앞으로 1천년 뒤에야 여성이 남성과 같은 정치·경제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경영대학원을 안 다닌 것이 차라리 다행이다" 등 상식을 깨는 주장이 툭툭 튀어 나와서다.

그녀는 영국 태생으로 1960년대엔 세계 각지에서 반전운동을 펴던 히피족 출신이다. 76년 천연 화장품제조업-만든 크림을 손으로 재생병에 퍼담는 구멍가게 수준이었다-에 뛰어들어 25년 만에 연매출 1조2천억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키웠다.

이 책엔 '광고에 미인 모델을 쓰지 않는 화장품회사, 동물을 실험대상으로 사용하지 않는 회사'란 독특한 기업이념을 지키며 환경브랜드 파워 세계 1위 기업을 키운 과정이 가감없이 담겨 있다. 미국시장에서의 실패, 뼈를 깎는 구조조정, 기업스토커에 시달렸을 때의 분노, 매장에 인권운동 포스터를 붙이고 서명운동을 벌일 때의 사내 갈등이 그대로 나타난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 경영인 중 한 명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히려 눈에 띄는 대목은 로딕의 인간적 모습이다. 그녀는 인권운동가를 정식 사원으로 채용하고, 소수인종의 권리를 위해 다국적 기업 불매운동을 벌인다. 여성들의 열등감을 부추기는 세계 미용산업의 마케팅 관행을 거스르고, 세계화에 반대하는 비정부기구(NGO)의 반세계화시위를 쫓아다닌다. 사내 청소부들 회의에 이사회의실을 제공하기도 한다.

사실 대개의 자서전은 재미없다. 한마디로 자기 잘났다는 성공담이기 일쑤라서다. 그렇지만 이 책은 그런 선입견을 거부한다. 이미 몇 차례 소개됐지만 다시 끄집어 낸 이유고, 딸에게 우선적으로 읽히려는 까닭이다.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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