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권에 번지는 테러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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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발리 테러 사건이 '테러 둔감 지대'였던 중화권(中華圈)을 뒤흔들고 있다. 홍콩 경찰은 15일밤 완짜이(灣仔)·란구이팡(蘭桂坊)·젠사쥐(尖沙咀) 등 홍콩 내 대표적인 유흥가를 대상으로 비상 검문 활동을 벌였다.

경찰 병력 3만5천 명이 모두 나서 술집·나이트클럽을 일일이 뒤졌다. 가는 데마다 '수상한 사람이나 수상한 물건이 있으면 즉각 신고하라'는 전단까지 나눠줬다. 긴급 전화번호를 인쇄한 쪽지도 붙여놓았다. 발리 테러가 더 이상 '바다 건너 재앙'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광저우(廣州) 등 중국 대도시의 여행사들도 인도네시아 관광상품의 판매를 일제히 중단했다.

홍콩의 치안 총수인 레지나 입(葉劉淑儀) 보안국장은 "(홍콩이)다른 곳보다 테러 위험은 적지만 지금은 다른 때에 비해 위험한 상황"이라며 즉각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특히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몰려드는 란구이팡 일대는 홍콩 경찰이 가장 신경쓰는 지역이다.

이 지역 일대는 주말이면 각국의 젊은이 수천 명이 몰려들어 새벽까지 한바탕 술판·춤판을 벌이는 곳이다. 때문에 홍콩 경찰은 15일부터 이곳 일대에 20∼30m 간격으로 병력과 차량을 배치해 수상한 행인은 일일이 검문하는 형편이다.

홍콩 경찰은 "시내 중심부나 관광객 밀집 지역에서 만약의 사태가 터지면 '한 시간 안에 상황을 장악한다'는 목표 아래 반(反)테러 모의 훈련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란구이팡을 찾은 홍콩 과기대학생 엔젤(21·여)은 "테러리스트들이 홍콩을 공격할 이유가 있느냐"고 반문한 뒤 "이런 검문 행위는 경찰의 과잉 반응"이라며 매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홍콩인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던 발리에서 테러가 터졌는데 홍콩에선들 테러가 없으리란 보장이 있느냐"는 것이다.

중국·홍콩의 언론들 역시 테러를 보는 시각이 이전에 비해 1백80도 달라졌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신(新)제국주의'라고 비난했던 언론들도 "테러를 막을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나서는 판이다.

테러로 경기가 위축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경기 진작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테러 공포'를 즉각 집안 단속에 활용하는 발빠름, 그리고 여기에다 슬쩍 '경기 부양책'까지 끼워넣는 계산술, 중국인들의 상황 대처 능력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yas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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