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하게 TV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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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클로즈업된 안경알, 그 렌즈 저 편에 텔레비전 화면이 하나 떠 있다. 눈은 멍하니 그 이미지를 받아들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쉴새 없이 떠드는 텔레비전과 함께 보내는 Y여사 얼굴이다.

임흥순씨의 비디오 작품 '미디어 매니아 Y여사'는 거울처럼 우리를 비춘다. 평범한 소시민들 삶과 그 가족 구성원들 일상에 딱 달라붙어 융화된 텔레비전의 영향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어찌보면 안방이나 거실 복판을 '떡' 하니 차지한 텔레비전은 이 시대의 진짜 집주인일지 모른다. '텔레비전에 안식년을 주자'는 얘기가 일리있게 들린다.

18일부터 11월 26일까지 서울 신문로 일주아트하우스에서 열리는 '리-미디에이팅 TV'전은 '우리 시대의 TV 다시보기'다. 사건을 전해주기보다 이제는 자신을 사건이라 여기는 텔레비전에 대한 생각들이 다양한 영상 작품으로 관람객들을 맞는다. 미디어 아트와 영상전용 공간으로 문을 연 일주아트하우스가 개관 2돌을 맞으며 기획한 기념전이다.

전시는 국내외 작가 12명과 4개 그룹이 텔레비전에 대한 '주체적 도발'을 탐구한 23개 작품으로 구성됐다. 1970∼80년대에 '대안적인 TV 탐색'을 내걸고 이뤄졌던 '안티-TV'운동이 한 축을 이루고, 또 한 켠에서는 시청자가 단순한 TV의 수신자에서 창작자의 위치로 올라 미디어와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디지털 시대 젊은 예술가들 4인 모임인 'Z/Z Zone'이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해부하고, 70년대에 '게릴라 텔레비전'이란 불렸던 비디오 다큐멘터리 운동그룹 'TVTV', 페미니즘 계열의 작품을 제작하며 TV의 관습적인 언어를 해체했던 다라 번바움 등이 20∼30년 전 TV를 비판하며 대중매체의 비판적 수용 방식을 생각한다. 윤리와 상상력이 없는 부도덕한 텔레비전이 닮은 꼴인 정치 계급과 비슷한 타락상을 보이는 현장이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건 통쾌하면서도 오싹하다.

해외 초청작들은 18일 개막일 낮 12시부터 2시간 30분 간격으로 아트큐브에서 무료 상영된다. 02-2002-7777.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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