勢불리기 대결 충청권서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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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치권 지각변동의 신호탄이 올랐다. 민주당 전용학(田溶鶴)·자민련 이완구(李完九)의원이 각각 소속당을 떠나 한나라당으로 옮겼다. 그런 대로 팽팽한 상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던 3당 관계도 달라질 전망이다.

이들의 움직임이 주목되는 것은 그 파장 때문이다. 그동안 당적변경 문제로 고심해 오던 의원들에게 변심의 정치적·심리적 한계가 깨졌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계기로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와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의 세(勢)불리기 대결에도 불이 붙을 전망이다.

가장 유리해 보이는 쪽은 한나라당이다. 李후보는 일단 기선을 잡았다. 盧후보의 당내 입지는 다시 흔들리게 됐다. 鄭의원의 정치인 흡인력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이번에 한나라당에 입당한 李의원은 자민련 3역을 지냈고, 田의원은 민주당 대변인 출신이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세론 확산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李후보는 그동안 "의원 빼내오기를 하지 않겠다"거나 "16대 총선 민의(民意)를 바꾸는 인위적 정계개편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李·田의원을 받아들인 것은 이와 배치된다.

李후보는 이에 대해 "우리와 뜻을 같이하겠다며 자발적으로 들어온 사람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다른 당 의원들, 특히 충청·강원·수도권 출신들을 순차적으로 개별 영입하겠다는 얘기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이들 지역 공략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충청·강원·수도권에선 상대적으로 정몽준 의원이 강세다. 부동층도 많다.

李후보 지지율이 30∼35%에서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것은 이곳에서 李후보가 기대만큼 호응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무소속으로 있던 강원 출신 한승수(韓昇洙)의원을 영입했고, 이번엔 충청 출신 둘을 데려왔다.

물꼬를 튼 한나라당은 민주당·자민련·무소속 의원들을 상대로 한 영입 노력을 보다 활발하게 펼 것으로 예상된다. 의원회관 등에서는 한나라당과 접촉 중인 의원 명단이 나돌기도 한다.

한나라당의 세불리기는 이회창 후보 집권 이후의 안정적 정국운영을 염두에 둔 측면도 있다.

"원내 과반수(1백37석)를 넘겼지만 집권 초기의 각종 개혁정책을 밀어붙이고 국회 차원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20석 안팎의 여유가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한 당직자의 주장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 보탬이 될 것이란 판단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정몽준 신당'의 기세를 꺾겠다는 뜻도 담겼다.

한나라당은 李·田의원을 끌어들임으로써 鄭의원과 제휴를 모색하는 JP(자민련 金鍾泌총재)와 민주당 반노(反盧) 진영에 상당한 심리적 타격을 주었다고 믿고 있다.

반노 진영이 鄭의원 신당 합류를 놓고 고심하고 있을 때 田의원을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시킨 것은 계산된 깜짝쇼란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李후보에게 역풍(逆風)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불리기에 대한 비판 여론이 대두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반(反)이회창'세력의 결집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상일 기자

le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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