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색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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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인류 최초의 우주 비행사였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 1호를 타고 우주로 날아 오른 것은 1961년 4월 12일이었다. 그는 정확히 1시간 48분 동안 우주에 체류한 후 지구로 귀환했다.

이후 '우주에서 내려온 사나이'가 된 가가린은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7년 후 비행기 사고로 석연찮은 죽음을 맞기까지 그는 지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생활을 즐긴 남성이었다.

가가린은 화술(話術)에도 뛰어났으며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가 지구 귀환 후 "지구는 푸른 색이었다"는 함축적인 명문(名文)의 첫 소감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그의 낭만성과 문학성이 결합된 결과였다.

지구가 푸른색을 띠는 이유는 지구 표면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물 때문이다. 물이 생명의 원천인 것이다.

가가린 이후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의 물과 환경의 변화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또 우주여행에 대한 흥분을 적절하게 표현해낸 수많은 소감을 쏟아냈다. 하지만 가가린의 명문을 뛰어넘을 만한 문장을 만들어낸 인물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우주 비행사로서 가가린만큼은 아니지만 물에 대해 언급해 화제를 모은 인물은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인 모리 마모루(毛利衛)다. 92년 9월 미국의 우주왕복선 인데버호를 타고 지구궤도에 올랐던 그는 "물 색깔이 변하고 있다"며 오염으로 몸살을 앓는 지구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2000년 2월의 두번째 비행에선 "아랄해가 8년 전에 비해 아주 작아졌다"며 환경재앙에 대한 구체적 경고를 발하기도 했다.

모리 마모루가 언급한 아랄해는 조그마한 섬들이 1천여개 이상 흩어져 있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내해(內海)다. 원래는 지구에서 네번째로 큰 내해였지만 현재는 물이 말라 여섯번째로 밀렸다.

이곳에 흘러들어가던 아무다리야강·시르다리야강의 물을 우즈베키스탄 등 주변국의 관개농지로 돌려놓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면 20년 후엔 호수가 아예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사태가 다급해지자 카자흐스탄 등 아랄해 연안 4개국 대통령들이 지난 6일 아랄해 살리기에 대한 국제 지원을 요청했고 내년엔 국제출연국회의를 도쿄에서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가린과 모리 마모루 이후 다시 한번 우주에서 지구의 푸른 빛에 관심을 가진 비행사가 나와 비행소감을 밝힌다면 그때 그는 과연 어떤 문장을 내놓을까.

김석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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