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미디어 정치 준비 덜된 대선후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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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권위주의나 전체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왔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미디어로부터 나온다'.

대통령 후보와 국민 개개인의 직접 대화가 불가능한 현실에서 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미디어들이 유권자들을 대신해 후보자의 인물 됨됨이와 정책·공약을 평가해 보도하고, 유권자들은 이를 토대로 지지자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이같은 미디어 정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지도자로서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과거 정치인들이 보여준 구태를 답습하거나 사이비 이미지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판이 높다. 없는 현실을 만들어 내는 연출 행위, 그럴 듯한 이미지 조작, 임기응변식의 답변 등 미디어를 통해 오히려 부정적인 모습이 더 많이 비춰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후보들이 미디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미디어 선거를 치를 자세가 돼 있지 않다'고 평가하고 있다.

미디어 정치는 미국에서 1960년대부터 본격 등장했다. 60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닉슨 후보와 맞선 민주당의 케네디 후보가 미디어 정치를 통해 승리한 첫째 사례로 꼽힌다. 케네디의 승리는 TV 토론에서 젊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뉴프론티어 정신'에 의한 '새로운 미국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문가와 시민들을 상대로 미국의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했고, 이런 모습이 미디어를 통해 보도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이번 대선의 경우 아직 향방은 모호하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통해 나타난 노무현 후보의 노풍(盧風), 이어진 지방선거·보선에서의 한나라당 압승, 월드컵 4강 신화를 등에 업은 정몽준 후보의 정풍(鄭風) 등 바람은 이어지지만 아직 여론은 방향을 정하지 못한 것같다.

그렇다고 우리 유권자들이 고무신과 막걸리, 또는 이미지와 바람에만 매몰돼 투표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정치의식은 매우 높다는 사실을 후보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국민은 자식을 미국에 조기 유학보내지 않아도 되는 나라, 조국에 자부심을 갖도록 이끌어주는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한국 현대정치사를 지배해온 3김의 퇴진을 앞둔 상황에서 새로운 정치를 기대하는 국민적 염원은 높다. 대선 후보자들이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을 내세우며 헐뜯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나 소모적인 정쟁엔 식상해 있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 요구되고 있다. 후보들이 공약 개발에 밤을 지새우고, 새로운 인물 발굴을 위해 삼고초려(三顧草廬)하는 자세를 보고 싶어 한다.

'사즉생,생즉사(死卽生,生卽死·죽을 각오면 살고, 살려 하면 죽는다)'라는 경구가 지금의 대선 후보자들에게 적합한 말일지도 모른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 자리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기보다 김구 선생 같이 대권을 떠나 국가 미래와 대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다. 미디어들은 구시대적 정치를 뛰어넘는 후보의 참신함을 유권자에게 알리고 싶어 하고 있다.

미디어전문기자 tw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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