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이탈세력이 1순위 李·鄭과도 '조건' 저울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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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직 내가 지지하거나, 대통령감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찾지 못했어. 여러분도 이리저리 기웃거리지 말고 기다려. 내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테니."

김종필(金鍾泌·JP)자민련 총재는 지난달 30일 당의 실·국장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런 말을 했다.

충청권 표를 의식한 각 정치세력이 JP와 자민련에 손짓을 하고 있다. JP는 대선 정국에서 ▶자신의 영향력 증대▶자민련 의원들의 개별 이탈 방지▶승리할 수 있는 후보와의 연대▶연대과정에서 확실한 지분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해선 이미 "대통령이 될 수 없다"고 선을 분명히 그어놨다.

2일 오후 JP는 '한나라당의 최근 동향'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JP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고 한다. 주변에선 그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와 정몽준 의원 가운데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확인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JP는 한 때 李후보를 '저승사자' '데스 마스크'라고 했을 만큼 적의(敵意)를 드러냈었다. 鄭의원에겐 지난달 8일 회동에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호의를 보였다. 하지만 자민련 의원들은 "이런 일들로 JP의 최종 선택을 예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한다. 그 때 그 때 정치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제휴를 모색하는 것이 그의 특성이기 때문이다.

자민련 소속 의원들은 개별적으론 李후보 쪽으로 기운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다. 그래서 "JP가 한나라당을 택하면 대부분 가겠지만, 鄭의원 쪽을 선택하면 일부 이탈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자민련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 핵심 측근은 "JP의 1차적 관심은 민주당의 이탈 가능성이 있는 의원들과 합쳐서 원내 교섭단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이를 통해 국고보조금을 받고, 이후 있을 후보들과의 연대 협상에서 우월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JP의 결심은 민주당 반(反)노무현 세력과의 통합 신당 문제가 윤곽이 잡힌 뒤에나 드러날 것이라는 게 이 측근의 말이다.

이 과정에서 李후보와 鄭의원이 어떤 자세, 어떤 조건으로 JP와 자민련 의원들에게 접근하느냐는 점도 그의 결심에 변수가 될 것이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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