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영화 '트리플 엑스': 줄거리 '유치' 볼거리 '찬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트리플 엑스'는 설정은 빤하지만 첩보영화의 주인공에 대한 고정 관념을 뒤집은 점에서 새로운 시도라 할 만하다. 첩보물의 대명사인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와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뚜렷하다. 주인공은 첩보조직의 정예 요원이 아닌 익스트림 게임(extreme game:고공 낙하 등 위험한 상황을 무릅쓰고 즐기는 스포츠)에 몰두하는 신세대 청년이다. 턱시도를 입고 파티를 섭렵하기는커녕 문신과 피어싱 투성이의 불량한 외모에서 반(反)영웅의 이미지마저 풍긴다.

야한 속옷을 걸치고 유혹의 눈길을 던지는 본드걸도 없다. 워낙 운동 신경이 뛰어난 덕에 빨리 적응하기는 하지만 총싸움도 서툴다. 그런데 이러한 아마추어적인 특징이 주인공을 오히려 돋보이게 한다.

스테이지를 거듭할수록 능력이 배가돼 게이머를 열중케 하는 게임의 주인공처럼, 영화와 함께 발전해가는 캐릭터인 것이다.

스포츠카 페라리를 몰고 번지점프를 하는 등 갖가지 모험을 즐기는 잰더 케이지(빈 디젤)는 어느날 파티에서 신경안정제를 맞고 실신한다. 그를 특수 임무에 투입하려는 미국 국가안전국(NSA)에서 납치한 것. 그의 암호명은 목 뒤에 새겨진 문신에서 착안한 트리플 엑스(XXX)다. 몇가지 테스트를 거친 뒤 합격점을 받은 그에게 NSA의 책임자 기븐스(새뮤얼 L 잭슨)는 프라하로 가서 생화학 폭탄을 잠수함에 실어 세계 도시들을 폭파하려는 무정부주의자 조직을 섬멸할 것을 지시한다.

'아버지'격인 007을 부정하고 나선 이 '신세대 아들'은 줄거리상의 구태의연함까지 극복하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말초적인 재미를 추구하던 '보통 사람' 케이지가 세계를 구하는 정의의 사도로 바뀌는 과정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 무정부주의자 조직이 뚜렷한 목적 없이 전세계를 파괴하려 한다는 설정도 실소가 터지는 대목이다.

너무 빤해서 유치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구성을 가려주는 건 대규모의 볼거리다. 엄청난 물량 공세와 주인공의 '원맨쇼'로 끊임없는 자극을 원하는 젊은 관객을 파고들려 한 시도가 제대로 먹혔다.

눈사태가 나는 설원을 배경으로 스키 보드를 타고 탈출하는 장면 등 장면당 24대의 카메라를 동원하고 컴퓨터 그래픽을 적절히 사용한 공들인 액션이 압권이다. 제작비 8천5백만달러(약 1천억원)를 들였다.

지난달 미국에서 개봉한 뒤 2주 연속 1위를 지켰다. 감독은 '분노의 질주'의 로브 코헨. 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