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부터 남녀 평등 시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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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가정 안에서 남녀가 평등해지지 않는다면 가정 밖에서도 결코 평등해질 수 없습니다."

'세계여성운동의 대모(代母)'인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68)이 27일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기자협회와 여성부·여성문화예술기획 초청으로 방한한 스타이넘은 이날 제주도 서귀포 칼(KAL)호텔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해 '여성운동과 언론'에 관해 강연했다.

스타이넘은 "아이들을 돌보고 교육시키는 일은 남자들의 권리이기도 하다"며 "여성 운동은 여자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며,'남성다움'을 강요받는 남자들에게도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남자가 여자보다 평균 6∼7세 정도 수명이 짧은 것은 폭력·스트레스 등 '남성다움'을 강요받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결혼은 여성을 합법적 반쪽 인간으로 만든다"는 말로 수많은 독신 여성 추종자를 만들었던 스타이넘은 66세였던 2000년 결혼해 논란을 일으켰다.

'변절자''페미니즘의 종말'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던 스타이넘은 이번 강연에서 "내가 변한 것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제도가 평등한 관계가 가능한 것으로 변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이가 태어나면 결혼은 균형을 잃게 된다"며 "아이의 '부모'로서 동등해야 진짜 평등한 결혼"이라고 덧붙였다.

스타이넘은 지난해 5월 한국의 안티 미스코리아 페스티벌에 "자매로서 한국의 여성 운동을 지지한다"는 영상 축하메세지를 보내는 등 한국 여성운동과도 인연이 있다.그는 이날 "미군들의 한국 여성에 대한 성매매·성폭력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있다"며 "방한 기간동안 미군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압력을 넣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자 출신인 스타이넘은 1972년 세계 최초의 여성주의 잡지 '미즈(Ms)'를 창간한 뒤 임신중절 합법화와 임금 차별 폐지, 여성의 의회 진출,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여성연대 운동 등을 펼쳐 역사의 흐름을 바꿨다. 왜 여성만 '미스''미세스'로 구분하느냐며 '미즈'란 용어를 만든 것이 그다. 99년 ABC방송이 뽑은 '20세기를 빛낸 여성 100명'에 선정되기도 했다.

서귀포=김현경 기자

goodjo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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