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해결사' 압바스 당선 확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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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 지난 7일 예루살렘 외곽의 베이르 나발라에서 마무드 압바스 PLO 의장(中)이 지지자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9일 치러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서 당선이 확실시된다. [베이르 나발라 AP=연합]

'평화협상가 아부 마진, 영구적 평화를 이뤄주세요'. 팔레스타인 수반 선거가 시작된 9일 오전(현지시간)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 자치정부 청사 앞에서 한 팔레스타인 여성이 높이 들고 있는 구호다. 온건.실리.평화협상주의자로 알려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인 마무드 압바스(69)에게 거는 주민들의 기대는 그만큼 크다.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아부 마진으로 더 잘 알려진 최대 정파 '파타운동'의 후보 압바스의 당선은 이변이 없는 한 거의 확실하다.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 추격을 벌이고 있는 인권운동가인 무스타파 바르구티(51)에 비해 30~40%의 표 차로 자치정부 수반 자리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 평화해결사="50여년간의 폭력과 투쟁에 지친 상당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이제 이.팔분쟁의 실질적 해결을 원하고 있다."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압바스 후보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최근 이렇게 설명했다. 압바스가 '끝이 보이지 않는 무장투쟁을 끝낼 수 있는 인물'로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다.

압바스에게 '평화해결사'라는 별칭이 붙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가 팔레스타인 지도부 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자주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나섰기 때문이다. 압바스는 이.팔 간 협상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1970년대부터 유대사회의 좌파 및 평화주의자들과의 대화를 주창해 왔다. 팔레스타인 독립을 최초로 명시한 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탄생시킨 대(對)이스라엘 평화협상의 주역이 바로 압바스다.

압바스의 가장 큰 장점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이스라엘의 평화 파트너라는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유혈 충돌을 가장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평화공존을 적극 지지하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은 물론 아랍 지도자들도 그에게 큰 기대를 걸어왔다. 특히 2001년 이스라엘이 야세르 아라파트와의 평화협상을 거부한 이후 압바스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왔다.

◆ 수반 자리는 다르다=아라파트 사망 직후 PLO 의장에 오른 압바스는 무장 인티파다(민중봉기)를 포기하라고 촉구하는 등 평화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노력했다. 8일 마지막 유세에서도 그는 이스라엘과의 대화를 즉시 재개하겠다고 천명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는 자치정부 수반으로서의 압바스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평화협상만을 담당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유세 기간 중 압바스의 어조는 상당히 강경했다. 이스라엘을 '시온주의 적(敵)'이라고 지칭해 이스라엘 언론의 비난을 사기도 했다. 과격주의 무장단체들을 달래기 위한 발언이었다. 결국 아라파트에 비해 대중적 인기와 카리스마가 부족한 압바스가 과격세력을 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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