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인생 20년' 맞은 김 미 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애 들 돌잔치도 아니고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에이, 그냥 호텔에서 디너쇼나 할까? 그런데 그건 또 아닌거라…. 그간 나를 사랑해준 팬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는 건데 한정된 사람에게 돈받고 쇼를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김미화(37)는 화려한 디너쇼를 포기했다. 대신 돈 내지 않아도 리모컨만 켜면 쉽게 볼 수 있는 TV를 택했다. 그녀가 이토록 고민한 행사, 그것은 자신의 '코미디언 20년'을 기념하는 축하쇼였다. 추석 당일인 21일 SBS '김미화의 코미디 스쿨'이 그 무대다.

지난 17일 오후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 무용연습실. 김미화와 후배 코미디언 10여명이 간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한창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자, 잘봐. 내가 창(唱) 부르는 장면 있지? 그거 보여줄게."

후배들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 장면은 없잖아요."

"알어, 알어. 일단 한번 보시라니깐요."

그녀는 오디오 앞으로 달려가 '여인천하' 배경음악을 틀었다. 쿵쿵 울리는 네박자 템포에 맞춰 그녀는 먼산을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아∼아아∼아흐아∼아∼아아." 순간 연습실 전체는 웃음바다가 됐다. 후배들은 배꼽을 쥔 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긴장한 사람들을 단번에 무장해제시키는 그녀는 진정 '코미디계의 대모(大母)'였던가.

"아이고, 아니에요. 제가 최근 몇년간 후배들 챙기는 거 보면서 사람들이 대모니 어쩌니 하는데 전 쑥스럽기만 해요. 죽어가는 코미디를 살리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선 젊고 끼있는 후배들이 팔을 걷어붙여야만 했어요. 저는 그 가교 역할만 한 거죠, 뭐."

김미화는 1983년 6월 MBC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다. 되돌아보면 지난 몇년의 일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사별로 코미디의 색깔이 없었다. 당연히 프로그램의 개성은 사라져 갔다. 그녀는 코미디가 자꾸 생기를 잃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다. 틈새시장을 개척해보자는 생각에 '밤에 하는 코미디'를 착안했다. 그녀는 혼자 아이디어를 짜내 PD를 찾아갔다. 서세원과 함께 밤 11시를 주름잡은 '코미디 세상만사'는 그렇게 빛을 보았다.

변신은 계속됐다. "관객을 정말로 웃겨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생방송이어야 한다, 콘서트처럼 즐거워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죠."

99년 여름, 신개념의 코미디쇼 KBS '개그콘서트'는 그렇게 탄생했다. 전유성·백재현과 의기투합해 대학로를 누비며 살아있는 코미디를 연구했다. '개콘' 팀을 꾸릴 때는 철저한 원칙이 있었다. 7∼8년 무명생활을 견뎠는가, 불러주지 않아 시간이 많은가, 그래도 코미디가 죽도록 하고 싶은가, 이 세가지였다. 무명 중고 신인들과 김미화의 합작품인 '악으로 깡으로' 코미디는 결국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됐다.

"언젠간 꼭 코미디 학교를 만들 거예요. 그 옆에는 어려운 분들을 위한 복지관을 세우고요. 그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데요.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하하하."

그 꿈은 결코 허황되지 않다. 코미디 학교 건물만 없다뿐이지 그녀는 후배들에게 매일매일 코미디론을 몸으로 가르치고 있다. 복지관 설립을 위해 이론 공부도 열심이다. 현재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2년생인 그녀의 지난 1학기 학점은 4.5만점에 3.98이다.

박지영 기자 naza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