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감 재량권 명확히” … 반격 나선 교과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교육과학기술부의 자문변호사들은 요사이 정신없이 바쁘다. 각 부서에서 담당 정책의 법적 근거와 권한 등을 묻는 일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15명인 자문변호사만으로는 모자라 국가로펌 격인 정부법무공단의 변호사들에게까지 도움을 요청할 정도다. 한 자문변호사는 “6·2지방선거 이후 교과부와 친전교조 교육감들 사이에 충돌이 잦아지면서 법률자문 요청도 많아졌다”고 말했다.

교과부가 지방선거 이후 확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다. 과거 정책방향을 정해 공문만 내려보내면 그냥 따르던 것과 달리 요사이는 일부 교육감들이 ‘재량권’을 내세우며 적지 않게 반기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교과부는 최근 각종 교육 정책과 관련한 법령 정비 작업에 착수했다. 국가 차원 업무인지, 일선 교육감의 재량권이 인정되는 사안인지를 명확히 정리해 추후 분쟁 소지를 없애겠다는 취지다. 특히 김상곤 경기교육감이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작업에 더욱 속도가 붙게 됐다.

교과부 관계자는 28일 “현행 교육 관련 법령에는 각 정책이 국가사무인지, 교육감의 자치사무인지가 불분명하다”며 “과거엔 법 규정이 어떻든 교육청이 교과부를 상급관청으로 인정했는데 요즘은 사사건건 부딪치기 때문에 정책별로 정리를 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법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법령을 손질하고, 법규에 반영할 수 없는 항목은 교육감협의회 등과 조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법령 정비 작업 돌입은 법학자 출신의 친전교조 교육감들이 몇몇 사안에서 법적 논쟁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해석이다. 헌법학자 출신인 김승환 전북교육감은 학업성취도 평가 논란과 관련, “내가 법률전문가다.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 방식으로 실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법학과 교수 출신인 곽노현 서울교육감도 학업성취도평가에서 학생들의 집단거부로 물의를 빚은 학교의 교사들을 경징계 처분하면서 “교과부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명시했다. 교과부로선 예전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벌어진 셈이다.

하지만 법령 정비 작업이 수월할지는 미지수다. 권한 여부를 일일이 규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교과부 규제개혁법무팀의 최호열 변호사는 “교과부는 그동안 통일성과 국가사무의 당위성을 주장해왔는데, 헌법학자 출신인 교육감들이 나오면서 기본권 문제까지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김성탁·이원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