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의 경제>90년 걸프전때 원유대책 수입선다변화 등 공염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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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원유의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1996년까지 정부 비축을 9천만배럴로 늘리겠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지 한달 째인 90년 9월 초 당시 이희일 동력자원부장관은 인터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사태 초기 장기화하지 않을 것으로 낙관했던 정부는 부랴부랴 긴급대책을 마련했고, 연내 유가 인상 방침을 발표했다가 하루 만에 번복하는 등 허둥댔다. 그런 뒤 주무 장관이 나서 이같은 장기 원유수급 대책을 밝힌 것이다.

당시 유가 오름세는 3차 석유파동을 연상시킬 만했다. 두바이산 원유가 배럴당 13~14달러에서 이라크 침공(8월 2일) 직후 32달러로 치솟았다. 29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증산 결정으로 주춤했다가 8월 31일 다국적군의 중동 진입으로 다시 급등했다.

상황이 급박했다. 하지만 정부 비축분은 4천만배럴로 50일치에 불과했다. 유가가 급등할 경우에 대비해 조성한 유가완충준비금은 금융기관에 장기 예금해 정작 일이 터져도 쓰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은 연말까지 원유 부족분이 1천3백60만배럴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원유의 74.3%를 중동에서 들여올 정도로 중동 의존도가 컸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소비절약, 장기적으로 수입선 다변화 외에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결국 자가용10부제 운행, 전기료 10% 인상, TV방영 시간 단축 등의 소비억제와 비축유 방출 등으로 대응하다가 91년 1월 다국적군의 이라크 침공이 한달 만에 끝나는 바람에 한숨을 돌렸다.

12년이 지난 2002년 9월.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라크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올 초 17달러 선이었던 원유 가격은 8월에 27달러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정부대책은 여전히 맴돌고 있다.우선 수입선 다변화란 말이 무색하다. 중동 의존도는 지난해 77%로 더 높아졌다. 유가완충준비금은 4천억원으로 걸프전 당시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정부 비축분도 47일분으로 당시보다 3일치가 적다. 상황이 이런데 10년 사이 석유 소비는 두배 가까이 불어났다.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한국의 지난해 1인당 석유 소비량은 15.7배럴로 세계 6위다. 걸프전이 다시 터진다면….

이재광 경제연구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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