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경여성이여, 콩을 먹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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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7면

지난 7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폐경 여성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복합제제를 장기간 복용하면 유방암·뇌졸중·심장병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며 5년 이상 복용자는 조심하라고 권고했다. 이후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에스트로겐의 복용을 중단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대다수 산부인과 의사들은 여성호르몬을 계속 복용하는 것이 실보다 득이 많다고 하지만 웬지 찜찜하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폐경 여성은 콩을 먹자=에스트로겐의 복용을 중단하면 골다공증·심장병 발생위험이 다시 높아지게 마련이다.

이를 걱정한다면 콩과 두유·두부·콩자반 등 콩제품을 되도록 많이 먹는 것이 대안이다. 콩엔 사람의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과 기능·형태가 비슷한 식물성 에스트로겐(phytoestrogen)이 풍부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미국 학자들은 콩을 즐겨먹는 한국·일본·중국 등 동양 여성이 얼굴 화끈거림 등 폐경 증상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경험한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 이유를 추적한 결과 콩에 든 식물성 에스트로겐인 아이소플라본이 비결이었다.

이후 미국에선 콩제품과 아이소플라본이 연간 30억달러어치 이상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대 식품영양과 이연숙 교수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골다공증 예방 등 뼈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데는 학자들 간 이견이 거의 없다"며 "미국 심장협회는 콩을 즐겨 먹으면 건강에 해로운 콜레스테롤인 저밀도지단백(LDL)의 혈중(血中)농도가 낮아지고 건강에 유익한 고밀도지단백(HDL)의 농도가 높아진다고 발표했다"고 전했다.

또한 콩을 즐겨먹는 일본 여성의 유방암 유병률은 미국 여성보다 훨씬 낮다. 일본 음식엔 식물성 에스트로겐이 서양 음식의 30~1백배나 들어있다.

그러나 약으로 먹은 에스트로겐이 유방암 위험을 높이듯이 식물성 에스트로겐도 유방암 발생에 기여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학자들은 콩을 즐겨 먹는 국민은 대장암·난소암·전립선암 등 호르몬 관련 암의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도 주시하고 있다. 피부 노화 방지에도 도움을 준다.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이제호 교수는 "폐경여성은 매일 두부 2모씩을 먹거나 청국장·된장국 등 콩음식을 즐겨먹을 것"을 권장했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콩을 너무 많이 먹으면 갑상선암이나 갑상선기능 저하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일부 연구결과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섭취하는 양 정도라면 전혀 걱정할 게 없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다만 신생아에게 두유를 너무 많이 먹이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는 학자도 있다.

◇칡뿌리에 가장 많아=아이소플라본·리그닌·쿠메스탄 등이 대표적인 식물성 에스트로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서울대에 의뢰해 각종 식품의 식물성 에스트로겐 함량을 조사한 결과 칡뿌리에 가장 많았다. 아이소플라본은 칡뿌리와 콩과 식물에 풍부하게 있는 반면 리그닌은 아마씨유에 가장 많이 들어 있었다.

서울대 식품영양과 권훈정 교수는 "콩의 아이소플라본을 더 많이 섭취하려면 조리할 때 물에 오래 삶지 말아야 한다"며 "콩을 삶기보다 찌는 것이, 삶더라도 압력솥을 이용해 삶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콩을 즐겨 먹더라도 골다공증 위험을 줄이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식이요법·운동·약물치료 등을 중단해선 안된다. 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 김정훈 교수는 "식물성 에스트로겐은 폐경여성의 치료용 약이 될 수 없으며 보조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효과도 약으로 먹는 에스트로겐의 1백분의 1~1천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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