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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꾼 아랍' 편견을 벗긴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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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서구인들이 '이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미지는 폭력과 광신과 섹스, 이 세 가지라고 한다. 시퍼런 언월도를 휘두르는 무어인의 광폭함, 머리를 흔들며 미친 듯이 알라를 외치는 신비주의자, 하렘에서 환락과 음란의 잔치를 벌이는 칼리프의 후궁들…. 이러한 부정적 이미지는 기독교권과 이슬람권 사이에 존재해 왔던 오랜 대립과 반목의 역사를 통해 뿌리내린 것들이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슬람권과 서구에 비견될 만큼 치열한 관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9·11 사건이 터졌다. 그러고 거의 1년 가히 '이슬람 특수'라 부를 만한 현상 아래 출판물이 많이 나왔지만, 국내 저자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가 쓴 『이슬람문명』은 단연 역작이다. 저자는 무엇보다 이슬람이 단순히 하나의 신앙체계가 아니라 사회생활 전반, 즉 종교와 세속 쌍방을 포함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책의 구성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전반부는 이슬람이라는 종교의 역사적 출현과 발전, 종교로서의 이슬람의 핵심을 이루는 예언자 무함마드와 『코란』(저자는 아랍어 발음에 따라 『꾸르안』이라 부른다), 신앙의 기둥이 되는 6신(信) 5행(行)을 차례로 다루면서 이슬람이 지니는 '신앙'의 측면을 설명한다. 후반부는 이슬람의 정치·경제·학문·문학·예술·생활문화·사회운동 등 '실천'의 측면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이슬람을 왜 알아야 하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설명을 서론으로 삼고, '한국과 이슬람'이라는 주제에 대한 논의로 결론을 대신했다.

전체 4백페이지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13개의 장들이 나름대로 독립적인 주제들을 다루고 있어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을 뿐더러, 장황한 설명이 아닌 몇 마디의 표현으로 핵심을 찌르는 저자 특유의 문체는 독자들의 이해를 용이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행간에서 배어나오는, 이슬람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라 할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이슬람을 종교가 아니라 문명 전체로서 조명해 보여주려는 것을 일차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지만, 동시에 개별적인 주제들과 관련해 기존의 뿌리깊은 편견을 불식시키는 데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이슬람의 급속한 팽창과 성공의 원인에 대해 "선교사업을 무력으로 강행한 전투적 종교의 성격 때문"이라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이슬람의 정교합일체제·보편성과 세계성·관용성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꼽는다. 또한 일반적으로 '성전(聖戰)'으로 번역되는 아랍어의 '지하드'(jihad)라는 말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이 말은 본래 '정신적 및 육체적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함'을 의미하는 것이고, 따라서 신앙의 순화와 발전이라는 개인적 측면과 이슬람권의 확산이라는 집단적 측면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이를 구별해 '노력 지하드'와 '성전 지하드'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 '근본주의'라는 말이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것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하면서 근대 이후 이슬람권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회운동을 보수와 개혁의 잣대로 다시 분류했다. 9·11 사건 이후 50여종에 가까운 이슬람 관계 서적들이 국내에서 출간됐고 그 결과 이제까지 낯설게만 여겨지던 종교와 문명이 우리에게 비교적 가깝게 다가온 것도 사실이다. 아직 이 방면에 대한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한 국내의 상황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폭과 심도를 겸비한 글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저자의 오랜 경험과 연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금후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스펙트럼 속에서 어떻게 다양한 양태로 나타나느냐, 즉 이슬람문명의 역사적 구체성을 탐구하는 '각론'으로 진행돼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슬람 문명』은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 '총론'으로서의 소임을 훌륭히 다하리라고 본다.

김호동 교수<서울대·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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