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휘둘린 몸통 車업체들 착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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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이번 사태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이제 외국계 부품업체들의 직접적인 영향력 아래에 놓이게 됐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차부품업계 관계자들은 29일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들은 납품대금을 미뤄온 대우자동차가 전날 미국계 부품업체인 한국델파이의 부품공급 중단 때문에 생산 라인이 멈춰서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착잡함을 감추지 않았다.

대우차의 승용차 라인을 한순간에 정지시킨 한국델파이는 미국의 델파이 오토모티브 시스템즈가 50%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업체다. 이 회사는 그동안 에어컨·조향장치 등 부품 30여가지를 납품해온 핵심협력 업체였기에 그만큼 업계에 주는 충격파도 컸다.

우리나라 완성차 업체에 대한 외국계 부품업체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외국 부품업체가 인수했거나 투자한 국내업체의 수는 현재 2백4개사다. 이는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말에 집계된 1백33개사보다 53%나 늘어난 것이다. 특히 이 가운데 1백8개사는 외국업체가 50%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 사실상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선 국내 부품업계가 외국 선진업체의 지분참여와 제휴를 통해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이들 외국자본이 전자제동장치나 전장부품 등 핵심부품에 몰리고 있는 점은 산업안보 차원에서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대·기아차도 외국계 부품회사로부터 공급받는 부품의 의존도가 20%를 넘어서면서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현대차의 한 관계자는 "외국계 부품업체들의 독점적이고 우월적인 부품공급 경쟁력은 자칫 납품가격 인하 등 국내 완성차 업계의 경영방침을 거부함으로써 국내 자동차의 대외경쟁력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KARI)의 유기천 연구위원은 "외국 부품업체들의 국내투자 확대는 국내 부품업체들의 전문화·대형화 및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주는 등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국내 부품업계가 외국자본에 지배될 경우 설계를 비롯한 핵심 기술개발 능력은 선진 외국업체가 독식하고 국내 부품업체들은 단지 생산하청기지로 전락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의 노만숙 과장은 "무분별한 외국인 투자유치로 인해 국내 부품업체가 도태되지 않도록 가능한한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선별적인 유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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