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물리적 대응 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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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가한 북한 대표부 소속인사가 휴식을 취하러 나가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을 쳐다보고 있다. [하노이=연합뉴스]

박의춘 북한 외무상은 23일 천안함 침몰 사태와 관련, “남조선 측이 이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함으로써 조선반도의 정세가 폭발 직전까지 가게 됐다”며 “사죄할 사람이 있다면 남조선 당국”이라고 주장했다. 박 외무상은 베트남 하노이 국립컨벤션센터(NCC)에서 열린 17차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 리트리트(Retreat·자유토론)에서 “천안함 사건은 진상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우리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절대 용납 못한다”고 말했다. 또 “진상도 밝혀지지 않은 문제를 안보리로 가져가 죽도 밥도 아닌 의장성명이 나오게 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이동일 외무성 군축과장이 전했다. 북한 회담 대변인을 맡은 이 과장은 한·미 합동 군사연습 실시와 관련한 외신기자 질문에 “미국의 군사조치에 대해 ‘물리적 대응(physical response)’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외무상보다 먼저 발언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북한은 천안함 도발행위를 명확하고 진실되게 시인하고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또 “북한은 국제사회의 촉구를 무시하고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고 한국에 대해 도발과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의춘 외무상은 사과 요구에 대해 “적반하장”이라며 “2012년 강성대국을 목표로 경제발전을 이룩해가는 시기에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정세가 도래했다”고 비난한 것으로 한국 측 회담 관계자는 전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이웃 국가에 대한 위협과 공격을 중단하고 비핵화를 이룬다면 역내의 책임 있는 국가로서의 혜택을 향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천안함과 관련, “안보리 의장성명이 발표된 만큼 이제 페이지를 넘겨야 한다”며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주장했다.

◆성명 문구 둘러싸고 신경전=ARF 의장국인 베트남은 천안함 사태에 대한 ‘깊은 우려(deep concern)’를 표명하고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을 지지하는 내용의 의장성명을 24일 발표할 예정이다. 성명은 그러나 안보리 의장성명과 달리 천안함 침몰 원인을 ‘공격(attack)’으로 규정하고 이를 ‘규탄한다(condemn)’는 것이 빠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앞서 아세안 외교장관 회의(AMM)와 아세안+3(한·중·일) 외교장관 회의는 천안함 사건을 “개탄한다(deplore)”는 표현을 썼다. ARF 성명은 북핵 및 6자회담 문제에 대해 “당사국들이 적절한 시기에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권고한다”고 밝혔다.

◆북, 천안함 언론 플레이=북측 대표단 4~5명은 회담장 로비에 진을 치고 회람된 성명서 영문 초안 문구를 첨삭하는 등 참가 국가 중 가장 부산한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일행이 스쳐 지나가자 한동안 주시했지만, 7~8m 거리에 머물던 한국 대표단과는 서로 눈길조차 주고받지 않았다. 북측 이동일 과장은 회의 직후 기자들을 불러모아 박 외상의 발언을 이례적으로 상세히 소개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천안함이 북측 소행이란 소문이 돈다는데 맞느냐”는 기자 질문에는 “나중에 또 합시다”라며 답을 피했다. 북한대사관 관계자는 “그걸 질문이라고 하느냐”며 거칠게 항의하기도 했다. 한 외신 기자는 “박 외상 숙소의 식당에서 한국말로 인사를 나눴는데 웃으며 화답하던 박 외상이 북측 요원이 제지하자 당황해하더라”고 귀띔했다.

하노이=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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