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아파트시장 '된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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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8·9 부동산안정대책에 이어 국세청의 자금출처조사 발표가 나오자 서울 강남권 아파트 시장이 더욱 위축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동산업계는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투자자의 손을 많이 탄 강남구 개포 주공·은마·청실아파트와 도곡 주공·잠실 주공 저밀도 아파트 인근 중개사무소에는 자신도 자금출처 대상이 되는지 묻는 사람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자금출처 조사 대상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이미 예전에 비해 큰 폭으로 줄어 있는 거래가 더욱 감소할 것으로 우려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아파트 매매가 급등의 진원지로 꼽혔던 단지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들 중 일부가 이미 8·9 대책 직후 아예 영업을 포기한 가운데 재건축 추진 속도가 빠른 단지 주변 중개업소들도 세무조사 진척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강남구 개포동 서울공인 정용현 사장은 "자녀나 친인척 명의로 아파트 등을 산 사람들이 요즘 불안에 떨고 있으며, 앞으로 자금추적조사의 강도를 높일 경우 거래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송파구 가락동 대성공인 남효승 사장은 "특히 초저금리가 장기화하자 투자수익을 노리고 전세를 끼고 소형아파트를 2~3채 사려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 수요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월드건설 조영호 영업기획팀 부장은 "부동산 투기세력들이 서울 강남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이라며 "재건축대상 아파트와 대형 평형을 중심으로 거래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효과가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적지 않다.

서초구 서초동 씨티랜드 안시찬 사장은 "자금출처 조사가 강도 높게 실시된다면 초기에는 투자심리가 위축돼 거래가 줄겠지만 강남권 아파트값이 급등한 데는 투기꾼들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수요가 워낙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시중에 여윳돈이 넘쳐 부동산으로 유입되는 구조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심리적 처방만으로 시장을 다스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뜻이다.

강남구 논현동 신현대공인중개사무소 하태실 실장도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자칫 이번 자금출처조사도 '솜방망이'가 될 수 있다"며 "단기처방보다는 공급확대 등 중장기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가수요를 죽이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면서도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현재 가수요가 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고 있는데 이번 규제가 가수요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문제는 앞으로 단속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이뤄지느냐이며 만약 단발성에 그친다면 장기적으로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서울 재건축시장을 옭아매면 여윳돈이 감시망이 덜한 수도권 분양권시장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전방위 투기억제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박원갑·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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