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에번스'포트레이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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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김정민 재즈 노트'와 '명반 컬렉션'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클래식과 재즈 감상에 젖고 싶은 팬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떨어지는 빗방울의 울림처럼 수많은 이들의 감성을 두드렸던 피아니스트 빌 에번스(1929~80). '재즈계의 쇼팽'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내면의 고독한 감성을 서정미로 승화시킨 그는 피아노 트리오에서 더욱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다.

그가 59년 스코트 라파로(베이스)·폴 모션(드럼)과 더불어 결성한'빌 에번스 트리오'는 내적 자아의 꿈틀거림에 반응하듯 긴밀한 상호작용을 펼치며 재즈의 자유정신이 어떤 것인지 극명하게 보여줬다. 당시 빌 에번스의 연주는 그 어느 때보다 촉촉하고 자유로웠다. 음 하나에도 깊은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섬세한 연주였다. 시적인 아름다움으로 충만했던, 음악 인생의 찬란한 황금기였다.

안타깝게도 61년 7월 라파로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짧은 만남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이들이 남긴 네 장의 앨범은 재즈의 역사를 빛낸 금자탑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친근하게 다가오는 것은 첫 앨범'포트레이트 인 재즈'(리버사이드·59년)다.

'포트레이트…'는 수많은 재즈 뮤지션이 앞다퉈 연주하는 스탠더드 명곡'오텀 리브스'를 비롯, '웬 아이 폴 인 러브''컴 레인 오어 컴 샤인'등과 같은 친숙한 선율로 꾸며진 앨범이다. 빌 에번스의 오리지널 곡인 '페리스 스코프',에번스와 마일스 데이비스의 공동 작품인 '블루 인 그린'도 함께 수록돼 신선한 매력을 전해준다.이들의 연주는 서로의 은밀한 세계를 공유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치밀하다.

에번스가 분출해낸 창조적 영감을 라파로가 베이스 연주로 화답하면, 여백의 아름다움을 살린 모션의 단정한 드럼 연주가 피아노와 베이스의 대화를 매끄럽게 이어준다. 발표된 지 4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싱그러움을 간직한 진정한 '재즈의 초상'이다.

<재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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