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건강과 총리서리 체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김대중 대통령이 폐렴으로 인해 자신의 임기 중 마지막이 될 8·15 경축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때문에 대통령 경축사는 장대환 총리'서리'가 대신 읽었다. 청와대는 병세가 호전돼 다음주 초부터는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金대통령 건강 이상(異狀)으로 인한 국정혼란 우려는 걷혔다지만 이날 드러난 '직제에 없는 총리서리의 대통령 대행'이라는 비정상은 여전히 과제로 남는다.

이것은 국가 위기상황 대처 미흡 및 군 통수체제 왜곡의 다른 방증이다. 대통령 유고(有故)를 대비한 법제의 미비 상태에서 그 자체가 위헌 시비의 대상이 되는 총리'서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다면 국가적 혼란과 위기를 부를 수 있다.

우리의 대통령 궐위(闕位)내지 사고 대비 법제는 헌법 제71조가 전부다.'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행 절차나 방법을 정한 법이 없어 실제 상황 발발시 혼란은 불가피하다. 대통령제를 채택한 미국이 엄격한 법제를 구비한 데 반해 대통령의 존재가 더욱 중시되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대한 불경(敬)이라는 봉건적 발상에 부딪쳐 방치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하물며 총리는 없고, 헌법이나 정부조직법에도 없는 지명자 상태의 '서리'만 있을 때는 더 심각한 일이 벌어질 터다. 대통령에게서 정식 임명장을 받은 만큼 그를 젖혀 두고 경제부총리·교육부총리 등의 순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한다는 것도 논란거리가 될 터이고 이로 인해 위기가 확대·심화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어느 대통령에게나 건강 이상이나 유고는 발생할 수 있다. 비정상을 걱정만 하고 위헌 요소가 있는 잘못된 서리 관행을 고집하기보다 유고에 대비하는 법제를 확실히 해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