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 소년 바다와 싸워 이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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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사진으로 보는 신간의 저자 제스 마틴의 곱상한 외모는 영어단어 라이언하트(lionheart)가 뜻하는 '용맹·담대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더더구나 12세기 유럽의 십자권 원정에서 사나움으로 명성을 떨쳤던 영국의 사자왕(獅子王·라이언하트) 리처드 1세와 연결짓기란 아무래도 무리다.

청년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듯한 만 17세(우리 나이로 19세)의 나이에 길이 10m가 조금 넘는(34피트) 요트를 타고 '단독 세계 항해 일주'라는 모험에 도전했다는 점, 중고로 구입한 그의 요트 이름이 라이언하트였다는 점이 무지막지한 신간 제목과 저자를 연결짓는데 참작사항이다.

오히려 그는 스쿨버스 통학시간에 수시로 졸며 전날 노느라고 지친 심신의 피로를 달래는가 하면 학교 생활이 따분한,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친구다.

특이한 점이라면 여행을, 특히 배낭여행을 지독히 좋아하는 부모를 둔 덕에 전세계를 떠돌며 유람하던 부모가 여행비를 벌기 위해 잠시 독일에 정착했을 때 태어났다는 점, 호주로 돌아온 부모가 문명과 동떨어진 오지같은 곳을 찾아 들어가는 바람에 호주 북동부 열대우림에서 자라며 수영·낚시 등을 자연스럽게 익혀 '정글 소년'같은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점 정도다.

이 세상에는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도 많다는 지론을 가진 엄마의 후원 덕에 열살이 되기 전에 미국·멕시코·동남아 등을 돌아본 경험은 고스란히 그의 핏줄 속에 미지의 곳에 대한 동경을 심어 놓았다. 14세 때 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호주 열대 해안을 1천㎞ 이상 요트로 항해한 그가 요트로 세계를 일주한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긴 건 어찌보면 자연스런 귀결이다.

수많은 모험 성공담이 그렇듯 저자의 준비 과정도 우여곡절과 시행착오로 점철됐다.

특히 일주 비용을 후원할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는 모습은 안쓰럽다. 어쨌든 그는 1998년 12월 떠날 수 있었고 호주 멜버른을 떠나 남미 남단 케이프혼,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거쳐 출발지로 돌아오는 2만7천해리(약 5만㎞)의 대장정을 3백28일만에 무사히 마친다.

11개월 동안의 무기항(nonstop), 무원조(unassisted) 바다 여행이 어찌 순탄하기만 했을까. 저자는 집을 떠난지 이틀만에 바람마저 잠잠해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망망대해의 배 위에서 혼자 떨어졌다는 고독과 무기력감에 대성통곡한다. 항해 중 고래를 만나는가 하면 유조선과 충돌할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폭풍우를 만나 물속에 잠길만큼 배가 기우는 '녹다운'을 세차례나 경험한다. 최연소 일주라는 값진 기록 경신에는 '자신의 한계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라거나 '어떤 사건에 대해 미리 불안해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보다 훨씬 나쁘다' 는 소중한 인생 경험이 전리품처럼 따라 온다. 저자의 얼굴은 어느새 용맹스런 사자의 모습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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