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러·캐나다 대사관은 입지조건 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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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덕수궁이 있는 정동 일대는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우리 근대사를 상징하고 있다.

덕수궁의 원래 터는 매우 넓었다. 북쪽으로는 덕수초등학교, 서쪽으로는 옛 경기여고와 예원학교를 포함하고 있었다. 정문인 대한문(大漢門)의 현재 자리도 도로 확장을 위해 본래 위치에서 14m나 뒤로 물러선 것이다.

대한제국 당시 덕수궁의 전각 수는 30개가 넘었으나 지금은 중화전과 함녕전 등 10개의 전각만 남아 있다. 일제가 돌담길을 만들며 덕수궁을 정면으로 잘랐고 외국 공관이 들어서면서 궁은 협소해졌다.

지금도 정동에는 외국 대사관이 많이 들어서 있다. 덕수궁 옛터에 들어와 있는 미국 대사관저와 영국 대사관은 1백여년 전에 자리잡았다.

지난달에는 러시아 대사관(지상 12층 등 4개동)이 신축됐으며 캐나다 대사관(지상 9층)도 건립이 확정된 상태다. 이 때문에 미 대사관 측은 형평성 문제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와 캐나다 대사관의 경우 문화재 보호법의 테두리 안에서 건립됐다.

문화재 보호법은 '사업부지 면적이 3만㎡(약 9천평) 이상일 경우 의무적으로 문화재 지표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러시아 대사관의 부지는 2천4백평,캐나다 대사관은 4백20여평에 불과하다.또 이들 대사관 부지는 덕수궁 옛터의 경계선 밖에 있다.

반면 신축 예정인 미 대사관 신청사와 직원용 아파트 부지는 덕수궁 옛터인 데다 면적도 1만3천여평에 달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각종 문헌상 미 대사관 신축 부지는 문화재 매장 가능성이 커 지표조사가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덕수궁에서 캐나다 대사관은 2백m, 러시아 대사관은 95m 떨어져 있다. 국가지정 문화재에서 1백m 이내에 위치한 러시아 대사관은 고도 제한 범위를 지켜 건립됐다.

반면 미 대사관 측이 신청사를 15층으로 건립할 경우 고도 제한 범위를 벗어날 가능성이 크다.

한편 덕수궁 옛터인 영국 대사관 뒤편에 들어서 있는 일부 건물은 문화재 보호 규정이 마련되기 전에 지어진 것이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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