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배수아 '시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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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배수아의 소설이 진화하고 있다. 배수아 특유의 몽환적인 문장들이 근래에 들어 점차 그 내면의 깊이를 더해가고 있는 것이다. '시취' 역시 그 과정에서 나온 작품들 가운데 하나다.

'시취(屍臭)'가 들려주는 것은 죽어가는 사람에 대한 얘기다. 작품 속의 그의 나이는 아마도 80살이 넘은 듯하다. 그러나 정작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이러한 물리적 나이는 그리 의미있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의식은 종종 젊은 사람처럼 팽팽하게 긴장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만큼 자신의 삶 속에 깃든 죽음의 냄새를 자각하는 그의 의식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 죽음은 그의 노쇠한 몸을 허물어뜨리고,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지만, 그의 삶을 이끌고 가는 것은 바로 시시각각 그를 조여오는 죽음의 생생한 악몽인 것이다.

그는 두 번 결혼에 실패한 후 오랜 세월을 혼자 살아온 사람이다. 그가 지금까지 고립된 삶을 살아온 것은 '타 존재에 대한 거친 이물감' 때문이다. 그가 두 아내와 헤어지게 된 이유 역시 누군가와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것, 이를테면 같은 욕실이나 같은 침실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극심한 거부감 때문이었다.

타자와의 관계를 잃어버린 삶 속에서 그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자아와 존재가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라고 느낀다. 자신의 삶이 죽음의 기나긴 예행연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각은 그를 살아있게 하는 유일한 이유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우연히 특급열차 탈선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그는 그 열차사고로 P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후 그의 의식은 온통 P의 생사여부에 대한 병적인 의문에 매달린다. P가 무사함을 확인한 후에도 그는 계속 P의 생사여부에 혼돈을 느끼며, 자신이 P의 죽음을 바라는지, P의 무사함을 바라는지 알 수 없는 혼란상태에 빠진다.

그는 왜 이토록 P의 죽음에 대한 예감에 집착하는가? 소녀시절의 P가 그에게 '어떤 특별한 존재만이 획득할 수 있는 고귀한 육체와 정신의 상태를 가리키는' 표지였기 때문일까? 그러나 헤어진 지 38년 만에 중년의 나이가 되어 만난 P는 진한 향수로 자신에게서 풍기는 상한 두부냄새를 감추며, '자신이 죽음의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마치 잊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는 P가 상한 두부냄새를 피워올리는 것은, 그녀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라고, 그래서 '시취를 느낄 때 이성(性)이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작가가 말하는 '시취'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의 껍데기를 둘러쓰고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삶 속에 서식하는 죽음의 냄새를 알아보지 못하고 욕망을 향해 질주하는 저 '과잉되거나 부조리하거나 철면피한' 우리의 맹목의 삶에서 새어나오는 냄새란 말인가? 배수아는 아마도 이 작품에서 죽음의 냄새가 삼켜버린 주인공의 악몽과도 같은 삶이 바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우리 삶의 맨얼굴이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것같다.

'사실은 죽음을 은폐하면서 살아가는 시간의 허물에 불과한' 우리의 삶이란, '단지 기호로 표현될 뿐인 삶과 죽음의 표피적인 결과에' 연연해하며, 시취 위에 뿌려대는 진한 향수냄새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박혜경 <문학평론가>

<약 력>

▶1965년 서울 출생

▶93년 『소설과 사상』으로 등단

▶소설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이바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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