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역겨운 '네탓' 공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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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상(張裳)국무총리서리를 퇴장시킨 정치권이 '네 탓' 공방을 벌이고 있다.'민주당의 내분 탓''한나라당의 위장 자유투표 때문'이라는 거친 손가락질은 어처구니없다. 그런 모습은 임명동의안 부결의 역풍이 자기 쪽으로 불까 책임을 떠넘기려는 대선 전략의 치졸한 속셈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통령후보의 도덕성 논란에다 여성계 반발이라는 부담으로 작용할까 그렇고, 민주당은 당내 반란이라는 꼴사나운 집안 형편이 드러날까 걱정해서다.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 과정은 청렴한 공직 문화 정착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주었다는 게 국민의 평가다. 그런데 정작 그런 작품을 만들어낸 의원들이 책임 회피와 눈치 보기로 그런 헌정사적 의미를 스스로 깎아내리고 있으니 한심한 것이다. 청문회 때 張전총리서리한테 시어머니와 비서에게 떠넘기지 말라고 몰아쳐 놓고는 자신들이 곤란한 처지가 되자 이처럼 책임 전가에 골몰하고 있는 게 역겨울 뿐이다. 때문에 '국회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담담하게 퇴진한 張총리서리를 정치권이 검증할 자격조차 있었는지 의심마저 든다.

'찬성 1백표·반대 1백42표'의 부결 결과는 미묘한 분석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표결 뒤에는 이를 정쟁(政爭)의 대상에서 풀어주고 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다수결 정치의 정신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눈치보기 속에 어떻게든 민주당의 분열상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고, 민주당은 청문회 쟁점을 후보에 대한 공격 소재로 활용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한나라당의 공작적 거짓말, 민주당의 부결 음모론'이라는 음해 수준의 용어들이 거침없이 남발되는 실정이다.

이런 움직임 탓에 국정 혼선과 정국 표류라는 표결의 후유증은 커지고 있다. 이제 각당 지도부는 국회 표결 결과가 여론의 반영이라는 교과서적 의미를 살리는 데 충실해야 할 것이다. 표결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정국을 정상궤도에 올려놓는 데 각당 지도부가 앞장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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