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대화 먼저 제의 않기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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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31일의 브루나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무장관 회의는 백남순(白南淳)북한 외무상의 연설로 막을 올린다. 바로 이어서 최성홍(崔成泓)외교통상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게 된다. ARF가 지역정세와 안보문제를 다루는 만큼 두 장관은 모두 한반도 정세에 대해 언급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두 장관은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문제로 가뜩이나 관심을 끌어온 남북 외무장관 연설은 더욱 주목되는 분위기다.

정부 대책의 밑그림은 정해져 있다. 서해교전과 관련해 할 얘기는 다 하되 가능한 한 남북 대결을 피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먼저 서해교전에 관한 정부 입장을 회원국에 알린다는 방침이다.

요컨대 이번 교전이 정전협정을 위반한 것으로서 남북간의 공동선언과 합의의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할 예정이다. 사실상의 책임론 제기다.

하지만 북한의 유감 표명에 따른 남북대화 재개 움직임은 적극 평가한다는 방침이다. 서해교전이라는 '과거'와 더불어 남북 장관급 회담 재개라는 '미래'도 함께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회담에선 서해교전에 얽매이지 않고 북한의 유감 표명으로 조성된 남북대화 분위기를 살려나갈 방침"이라며 "ARF가 회원국간 신뢰구축을 위한 회의체인 점도 유념해달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입장은 서해교전에 따른 대북 불신 여론과 남북관계 진전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은 것이라는 풀이다. ARF 의장성명이 서해교전을 우려하면서도 남북대화를 촉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도 우리 정부의 적극적 중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변수도 없지 않다. 정부는 白외무상이 서해교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전화통지문 내용과 다른 소리를 할 경우 대응 수위를 높인다는 전략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문제는 崔장관이 白외무상의 연설을 듣고 난 뒤 결정하게 될 것이나 白외무상이 북한의 대화 의지를 의심케 하는 발언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별도의 남북 외무장관 회담 개최에 대한 정부 입장은 명백하다. 우리측이 먼저 대화를 제의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역시 북한에 대해 곱지 않은 국민 여론을 감안한 조치다. 그러나 북한이 회의 기간 중 대화를 제의해오면 거부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북한의 서해교전에 관한 입장이 우리의 기대와 요구 수준에 모자랄 수도 있지만 남북간 화해와 협력을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북간 별도 회담 개최 여부는 白외무상의 연설 내용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브루나이=오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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