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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대, 한국 주도로 열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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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열자는 것은 현 정부 3대 국정목표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동북아시대 구현 목표는 출범 초기부터 안팎의 비판을 감수해야 했고, 아직도 많은 지식인이 그 유효성에 의구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참여정부 2년에 대한 평가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외교안보 분야에도 첨예한 논쟁이 일어났고, 동북아시대 국정목표를 둘러싼 문제 제기가 다시 등장했다. 동북아시대론을 역설해온 필자로서 다시 한번 그 유효성에 대해 답할 책임을 느낀다. 동북아시대 구상에 대한 문제제기는 대체로 세 갈래다.

첫째, YS 때는 세계화를 했고 DJ 때는 아태를 했는데 이제 와서 동북아라고 하니 인식을 넓혀야지 왜 자꾸 범주를 좁히느냐, 그래서 운신의 폭을 제한하고 협소함을 자처한 것 아니냐 이런 문제 제기다. 세계화도 맞고, 아태 역시 부적절한 용어는 아니다.

그러나 동북아를 내걸었다고 세계화 전략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세계를 상대로 통상도 하고 외교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동북아 지역전략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세계화 전략도 구사할 수 있는 것이다. 아태와는 분명 차별성을 두고 있는데, 이는 북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 동아시아라는 개념도 그렇고 아태도 마찬가지지만 북한에 대한 치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지 않다. 동북아는 분단문제와 탈냉전의 가속화, 북한문제의 해결 등에 관심을 상대적으로 더 두고 있다. 중요한 점은, 지리적이 아니라 기능적이고 가치지향적으로 생각하면 동북아로도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양자택일적 문제 제기로서 동북아시대라고 하면 흔히 중.러를 중시하고 미국과의 관계를 경시하자는 것 아니냐라는 인식이다. 나아가 어떻게 중국이나 러시아를 미국과 같은 반열에 놓고 생각할 수 있느냐, 한.중 관계로 한.미 관계를 대체하자는 말이냐라는 의문도 던진다.

동북아시대를 얘기하는 그 누구도 중국이 미국만큼 선진적이고 강력하다고 주장한 바 없다. 한.미 관계를 한.중 관계로 대체할 수 있다고 말한 사람도 없다. 한국과 한반도의 제반 문제에 있어 중국도 이제는 매우 중요한 강대국이 됐다는 것이 동북아시대론자의 주장이다.

이는 한국의 중장기적 국가 진로나 대외전략의 무게와 관련된 사안으로서 논쟁의 소지가 있는 부분이다. 또한 미국에 대한 인식과 한국의 역량에 대한 평가 및 이론적 입장에 따라 견해가 갈릴 수 있는 문제다.

동북아시대론은 포괄적 한.미 동맹을 발전시키되 중국을 위시한 대륙축과도 협력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 국가 운영의 균형을 추구하면서 자율적 역량을 키워보자는 포부와 실천의지를 담고 있다. 지나치게 군사중심적인 한.미 동맹을 탈군사화해 보다 정책중심적인 성격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며 양국의 국익에 동시에 봉사하는 대화와 협조의 관계를 만들어가자는 취지다. 누구의 안보와 평화냐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을 요구하며, 지금 한국이 그런 처지가 되느냐라는 문제도 냉정하게 따져보자는 말이다.

셋째, 동북아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할 중국과 일본이 호응하느냐, 한국이 자격이나 역량이 되느냐 이런 문제제기다. 중국과 일본이 열렬하지는 않지만 소극적이지도 않다. 우리가 설득하고 지지를 구하면 응할 분위기가 양국에 있다. 또한 한국은 동북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말할 자격도 있고 역량도 있다.

도덕적 우위, 지리적 위상, 민주화의 빛나는 성취, 역동적 시민사회 등의 요소야말로 역내 비전을 주창할 수 있는 근거다. 일본이나 중국은 역내 통합이나 협력에 있어 주도권을 내세우기 어렵다. 분단을 극복해야 할 절박성을 가진 우리야말로 역내 평화와 공동번영을 강조해야 할 주체다.

동북아시대 구상은 거스를 수 없는 역내 흐름에 부합하는 국가전략이자 공존의 지역질서를 만들자는 비전이다.

이야말로 분단과 내부분열로 고통받아온 한국인들만이 제시할 수 있는 고귀한 비전이다. 북핵문제를 해결하는 과제나 북핵 이후 북한문제를 다룰 수 있는 틀도 동북아협력이다. 따라서 동북아시대 구상은 유효하며, 국론을 모아 과감하게 추진해야 할 과제다.

이수훈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