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까지 시간 걸릴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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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세계무역기구(WTO)는 17일 미국의 새로운 반덤핑 규정인 '버드 수정안'에 대해 철폐를 권고했다. WTO 분쟁해결기구(DSB)의 3인(人)패널은 이날 분쟁 당사국에 비공개로 전달한 보고서에서 "버드 수정안이 WTO 협정을 위배한다"고 밝혔다.

버드 수정안은 2000년 10월 로버트 버드 미 상원의원의 주도로 발의됐다. 이 안은 세관이 거둔 반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금을 제소자 측에 재분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국은 버드 수정안 시행 직후 6개월 동안 5백억달러에 이르는 돈을 거둬들였다.

한국을 비롯한 EU·일본·오스트레일리아 등 11개국은 지난해 7월 "다른 나라 기업에서 거둔 벌과금을 미국 기업에 기술개발비 등으로 나눠 주는 것은 이중 처벌"이라며 WTO에 제소했었다. 1995년 WTO체제 출범 후 11개국이 공동제소국으로 나선 것은 버드 수정안이 처음이다.

패널의 권고에 대해 미국 측은 상소할 것으로 보인다. 심사를 거쳐 WTO 분쟁해결기구가 폐지 권고를 정식으로 채택하면 미국은 30일 이내에 이행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이행계획이 제출되지 않거나 당사자들이 이를 거부하면 이행에 관한 협의를 벌이게 된다.

따라서 버드 수정안이 최종 폐지될 때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외교통상부의 한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WTO의 자유무역 원칙에 배치되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번 결정이 한국 제품의 수출을 당장 늘리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한국이 WTO에 제소한 미국과의 무역분쟁은 버드 수정안을 포함해 6건이며 이중 5건을 승소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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