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장비업계 해외서 활로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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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국내용 산업'으로 불리던 반도체장비업계가 중국·대만 등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지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거나 국내업체들끼리 연합해 진출하는가 하면 반도체설비 기술을 응용해 화학·바이오설비 분야에도 뛰어들고 있다. 1997년 4억9천달러에 달했던 국내 반도체장비 시장규모가 지난해 2억달러대로 떨어진 데다 하이닉스 위기 등으로 더 이상 내수 시장에 기대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해외진출 등 살 길 찾아 나서=반도체 클린룸 설비업체인 성도이엔지는 외환위기 당시 일찌감치 동남아와 중국에 판매법인을 세웠다. 지난달 말레이시아와 쿠웨이트에서 32억원 상당의 기계설치 공사를 수주한 것은 이 덕분이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다른 장비업체인 실리콘테크사와 공동으로 국내와 미국·일본·유럽 등지에서 나오는 중고설비를 사서 중국과 대만에 수출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사 유종완 부장은 "중국·대만에는 대규모 투자뿐 아니라 소규모 성능개선 투자 등 다양한 수요가 있어 유망한 시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도체장비기술을 화학·바이오분야에 응용하며 사업영역을 넓히는 업체도 있다. 반도체설비 전문시공업체인 한양이엔지는 최근 한국바스프사의 비타민 제조공장 프로젝트를 수주해 생화학분야 공장까지 영역을 넓히는 데에 성공했다. 또 이달초 대만 LCD 부품판매회사인 ACT사와 합작으로 홍콩에 현지법인을 설립해 대만·중국 등지의 반도체 및 화학공장의 설비부문을 수주하기 위한 마케팅에 들어갔다.

반도체 소모품과 반도체제조공정용 냉각기인 칠러를 생산하는 에프에스티사는 지난달 대만 칠러 업체인 TECO그룹, 일본 검사장비 제조업체인 레이저텍과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대만·일본 진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다. 이밖에 디아이 등 많은 중소기업들이 해외진출을 추진 중이다.

◇아직은 험난한 해외 진출=그동안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대규모 반도체회사에 크게 의존했던 만큼 장비업체들의 해외진출은 크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내에 4백여개의 장비업체가 있지만, 상위 20대 기업의 평균 임직원수가 80명밖에 안될 정도로 업체들 대부분이 영세하다. 혼자서 해외로 나가 시장을 개척하는 게 어렵다. 게다가 공장가동 후 유지·보수 책임을 위한 현지 AS센터 운영도 만만치 않아 상당수 업체들이 해외진출을 망설이고 있다.

반도체장비업체 협의기구인 SEMI 코리아 이주훈 대표는 "국내 반도체장비업체의 기술력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브랜드 파워가 낮고, 외국 기업들의 기술신뢰도도 낮다"면서 "독자적인 해외시장 진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도체산업협회 이종희 부장은 "반도체장비업체가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수출뿐"이라며 "어떻게든 뚫지 않으면 안된다"고 밝혔다. 장비업체끼리 뭉치거나 외국 장비업체와 전략적 제휴를 맺어 해외에 공동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 많다.

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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