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긴장감 팽팽한 추리가 있는 과학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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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1994년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방한했을 때 그의 출세작 『개미』의 번역자 이세욱씨는 나를 가리켜 "베르베르가 오래 못 잊을 사람"이라고 했다. 나를 포함해 몇 사람의 문인이 베르베르의 방한을 맞으며 준비한 대담 자리였다.

나는 그 대담에 앞서 『개미』의 서평자로 알려져 불려나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개미』의 의미 있는 대중성을 한껏 평가하면서도 종반부의 '촌스런 활극' 같은 대목이 아쉽다고 말했다. 베르베르는 방송 인터뷰 때 그 사실을 번역자를 통해 알고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대담이 마무리될 때 베르베르는 내게 "곤충학자 살해범을 누구라고 파악했나"라고 따졌다. 어쨌거나 『개미』의 인기는 그의 고국에서보다 한국에서 하늘을 찌를 듯하던 때였다. 나에게도 역시 '오래 못 잊을 작가' 베르베르는 이후 『타나토노트』 등 몇 편의 화제작을 잇다가 이번에 『뇌』라는 소설로 또 나타났다.

그 사이 그는 프랑스 문학 독서계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각광받으면서 그 명성을 세계로 확장해 가고 있었다. '재미를 최우선'으로 친다는 그의 작법에 애초 선입견을 두지 않는 나로서는 이번 소설 역시 관심의 표적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보다 실력이 나은 컴퓨터와의 세기적인 체스 대결에서 승리한 저명한 신경정신 의학자 핀처 박사가 애인과의 정사로 승리를 만끽하던 중 돌연사하는 얘기부터가 어김없이 호기심을 유발하는 과학 스릴러물.

당연하게도, 그 죽음의 원인을 캐가는 탐정들(잡지 기자들)의 범인 찾기가 한 축이 되고, 그들의 추적에 서서히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 범인(죽은 의학자의 환자)의 범행 과정이 또 한 축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교통사고로 '리스' 상태가 되어 눈동자로만 의사 전달을 할 뿐인 마르탱이다. 그는 핀처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며 뇌의 능력을 계발해 마침내 의학사에서 잊혀진 '최후 비밀(원제가 이 뜻이다)'을 알게 된다.

전기 자극을 받으면 쾌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뇌의 '최후 비밀'의 실험 대상으로 핀처 박사가 나섰다가 '자극 과다'로 죽은 뒤에 마르탱은 자신의 연구 결과(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는 기술)를 세상에 유포시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 그 사실을 은폐하고 병원을 장악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라는 화두가 거듭 제기되면서 삶의 원동력이 되는 '궁극적 동기'를 찾는 탐정들의 여정도 함께 펼쳐진다. 그 동기로는 고통을 멎게 하려는 욕구, 공에서 벗어나려는 욕구 등 11개의 개념이 내세워진다.

무엇보다 뇌의 최후 비밀이 가져다주는 무한의 쾌감이라는 동기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순수한 사랑의 동기'라고 이 소설은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뇌의 비밀과 관련된 이 소설은 예의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 추리의 결합을 통해 극적 긴장감을 제공한다. 『개미』 이후 베르베르에 관한 한 가장 열정적인 번역을 대하는 느낌도 좋다. 그런데, 나는 또 『개미』의 종반부에 대한 감정이 이 『뇌』로 옮겨가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최후 비밀을 위해 자기 존재를 바친 대 의학자가 '자극 과다' 하나 예측하지 못했다니!

박덕규(소설가·협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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