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현상'어떻게 볼 것인가<下> : 軟性 국력 발휘할 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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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강에 진출한 한국 축구의 힘을 일본에서 보는 기쁨은 더욱 컸다. 일본인들은 한국축구의 승리와 우리 국민들의 응원을 극찬하고 부러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기적을 이뤄낸 한국축구의 힘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한번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힘'배우려는 일본

일본인들은 한국팀이 4강에 들어간 것은 일본이 못다한 몫을 성취했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트루시에 감독이 4년 동안에도 못한 업적을 히딩크 감독이 1년반 만에 이룬 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선수들이 연장전에서도 피곤함을 모르고 끝까지 뛴 그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이를 응원하면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열정과 결속에 놀라고 있다. 7백만 군중이 광장과 시가를 누비고 다니면서도 큰 사고 없이 질서있게 행동한 것도 일본인들은 찬양했다. 일부 청소년들은 실제로 한국팀을 응원했고 한국응원단의 유니폼을 사 입고 다닌다고 언론은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식자들은 월드컵을 공동 개최한 것이 잘 된 일이라며, 이 결과 한·일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들은 축구에서만 아니라 경제의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일본은 한국의 실적에서 배워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확실히 한국팀과 그들을 응원한 국민들은 진실로 공감할 수 있는 국가목적과 이를 꼭 완성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그것을 달성하는데 무서운 결속력과 애국심을 응집할 수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적어도 축구에 있어서는 한국은 주변 4강들, 즉 미국·중국·일본 및 러시아보다 더 강한 힘을 구사했다.

이 결과 우리는 커다란 자긍심과 희망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뿐만 아니라 범 세계적으로 명실공히 축구 강국이 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확고한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완수하는데 모든 체력과 정신력을 집결한다면 어떠한 난제도 풀 수 있다는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일본인들은 놀랍게 보는 한편 고질적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위기감이 없는 자신들의 현황을 개탄하고 있다.

그런데 월드컵 경기에서 한국이 획득한 힘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힘의 원천은 선수들의 정신력, 국민들의 결속력과 질서의식 등 한국인들이 가진 저력이라 하겠다. 이는 하버드대의 조셉 나이 교수가 말한 이른바 '軟性 국력(soft power)'에 속한다. 나이 교수는 국제관계에서 이러한 국력을 군사 및 경제가 산출하는 '硬性 국력(hard power)'과 구별했다. 이러한 힘은 군사력과 같이 상대국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이 원하는 것을 상대국이 스스로 부러워하게 만드는 능력이라 했다. 이 소프트 파워는 이념·문화·지도력·정보 및 제도와 같이 보이지 않는 자원에서 온다는 것이다.

한국축구의 성공은 우리도 이러한 의미에서는 강대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계 최대의 인구를 갖고 신흥강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세계 제2경제 대국인 일본, 세계 유일초강대국인 미국, 경제는 취약하지만 아직도 방대한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 등 4강들 사이에 처한 한국은 비록 군사대국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월드컵에서처럼 문화와 과학기술에서도 타국으로부터 존경받는 연성국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해야 할 것이다.

경제·문화에 파급됐으면

사실 탈냉전과 세계화 시대에는 이 소프트 파워가 하드 파워 못지 않게 중요시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축구강대국이 된 것을 계기로 삼아 급부상하고 있는 국가위신과 이미지를 경제와 문화발전에 파급시키기 위해 구체적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각오로 정치·경제·사회 등 기타 부문에서도 이 소프트 파워를 대폭 격상시키는 정책을 발전시켜 가야 할 것이다. 방대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진 브라질이 축구왕국이 됐지만 과연 경제 등 기타 방면에서도 그만한 국력을 보유하고 있는지를 우리는 새겨보아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월드컵에서 과시한 소프트 파워를 깨끗한 정부, 안정된 사회, 혁신하는 기업, 그리고 신뢰 받는 법 제도를 정립하는데 발휘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국가 일정을 제시해 또다시 대한민국 국민들의 열정과 두뇌를 결집할 수 있는 지도자들을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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