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신고하겠지 … 살인 눈감은 ‘방관자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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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송파경찰서는 11일 행인 양모(23)씨를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유학생 박모(17)군 등 3명을 구속하고, 폭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은 김모(19)씨 등 3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유학생 일행 중 군 훈련소에 입소한 최모(20)씨는 혐의 내용을 군에 통보했다. 이들 유학생 7명은 지난달 17일 오전 3시30분쯤 서울 잠실동 신천성당 앞에서 양씨를 폭행한 뒤 달아났었다. 뇌사 상태에 빠진 양씨는 지난 6일 숨졌다. <본지 7월 10일자 18면>

이렇게 양씨 사망 사건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고 있지만 당시 현장에서 일어난 ‘방관자 효과(bystander effect)’는 우리 사회에 큰 숙제를 남기고 있다. 방관자 효과는 도심 속에서 수많은 목격자가 범죄를 외면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다. 도시화로 인해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게 되면서, 그래서 이웃이나 공동체를 나와 같은 운명체로 여기지 않으면서 발생한다.

양씨 사건의 경우 유학생들이 양씨를 집단으로 폭행한 곳은 ‘먹자 골목’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최소한 10여 명의 행인이 이들의 폭행을 지켜봤다. 하지만 누구도 말리지 않았고 신고하지도 않았다.

방관자 효과는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에서도 발견된다. 김은 한낮에 A양(8)의 눈을 감게 한 뒤 600여m나 끌고 갔지만 신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뒤 경찰은 아동 성폭행 신고 포상금을 크게 높이는 고육지책을 내놓기도 했다.

한국뿐만이 아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크게 화제가 됐던 ‘중국의 마작 노인 사망 동영상’도 비슷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동영상에는 마작을 즐기던 70대 노인이 쓰러져 숨져가는데도 도박장 안의 수많은 사람들은 무신경하게 마작을 계속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경찰대 표창원(경찰행정학) 교수는 “방관자 효과는 심리학적으로 봤을 때 ‘책임의 분산 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보다 더 이 사건을 잘 알거나 피해자를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란 생각, 내가 신고를 않더라도 경찰 등 범죄전문가들이 사건을 알아서 해결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목격자를 방관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괜히 신고했다가 피해만 보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과도 일맥상통한다. 표 교수는 “목격자가 많을수록 ‘이건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며 “이로 인해 북적거리는 도심에서 방관자 효과가 강하게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38명이 사건을 지켜보고도 신고를 하지 않은 미국 뉴욕의 ‘제노비스 사건’, 무참히 끌려가 살해되는 4살 아이의 모습을 시민 38명이 방관한 영국의 ‘리버풀의 38인 사건’은 무책임한 도시민들의 심리상황을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은 교육을 통해 책임있는 시민의식을 끌어올리고, 신고 인센티브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려대 허태윤(심리학) 교수는 “경찰 등 신고받는 기관에서는 첫 번째 신고만 가치 있다고 생각해 포상하는 것이 아니라 두 번째, 세 번째 신고도 의미있다는 걸 적극 알려야 한다”며 “이로 인해 뒤늦게라도 상황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식을 키워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심 속 범죄에 대한 ‘방관자 효과’ 사례는

2010년 6월 서울의 김수철 사건 초등생을 눈 감게 한 뒤 600여m 끌고 갔지만 신고한 사람 없음

2010년 중국의 마작 노인 동영상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시의 찻집에서 70대 노인 쓰러져 숨져갔지만, 모두 마작에만 신경씀

1964년 미국 뉴욕의 ‘제노비스 사건’미국 뉴욕에서 키티 제노비스란 여성이 괴한에게 35분간 공격당해 사망. 목격자 38명 중 아무도 신고 안 함

영국 리버풀의 ‘38인 사건’영국에서 4살 아이를 10살짜리 남학생 두 명이 살해. 목격자 38명 중 아무도 신고 안 함


송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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